버스를 타고 가는데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띄었다. 눈길을 오래 사로잡을 뿐 아니라 보고난 뒤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글귀였다. "주민의견 수렴안는 횡단보도 사수하자!" 우선은 '안는'의 맞춤법이 틀려 있다. '않는'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문장도 이상하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최대한 그 의미를 짐작해보자면 이럴 것이다. "주민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횡단보도를 철거해선 안된다. 횡단보도 사수하자." 그러고 나니 이번엔 '사수'가 마음에 걸린다. 사전에 따르면 사수는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뜻인데 아무리 그래도 횡단보도에 동네 주민들이 목숨을 건다니 좀 심하다 싶었다.보시다시피 이렇게 맞춤법이며 앞뒤가 철저히 안 맞는 과장된 비문법적 구호인데 이상하게 오래 기억이 남았다. 이것이 바로 '오류의 주목효과'다. 정확한 문장이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플래카드지만 이상했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기억되었다. 한글학회에선 싫어하겠지만 저렇게 이상하게 쓰는 게 그들의 목표인 횡단보도 사수에는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도 한번 따라서 외쳐보자. "주민의견 수렴안는 횡단보도 사수하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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