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경기를 관전하러 월드컵 상암 구장에 갔다. 입구가 바로 옆인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빙 둘러 가도록 낮은 담을 쳐 놓았다. 관중들이 이를 지킬 리 만무했다. 많은 사람들은 염치 불구하고 담을 넘어갔고, 안내요원들은 이를 제지하느라 안간힘을 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했던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망가지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법률가로서 보기에는 담을 넘은 사람들을 탓하기에 앞서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상암 구장측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미국의 28대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은 프린스턴 대학 총장 시절 교내에서 학생들이 빨리 가기 위해 우회하지 않고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잔디가 죽자 아예 그 방향으로 길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는 과감히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행정학자 특유의 논리였다. 악법도 법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할까. 물론 정당한 절차에 의해 개정되길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개정될 조짐이 보이지 않거나 지지부진할 때는, 거창하게 '저항권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연히 개정 투쟁 세력이 등장하는 법이다. 과거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도 이 같은 투쟁의 일환이며 현재의 여러 집단행동도 바로 그 일환이 아닌가 싶다.
법(法)은 한자 풀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당연한 자연섭리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물이 거꾸로 흐르는 듯이 부자연스럽고 현실과 동떨어진 법령이 존재한다. 유전자감식기법이 등장한 시대임에도 여자는 이혼후 6개월내에 재혼을 못한다는 조항, 낙태 금지 조항, 반드시 앞 차의 좌측으로 추월해야 한다는 조항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각 정부 부처는 소관별로 이 같은 개정대상 법령에 대한 개정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수 십년 째 방치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제 대통령 직속으로라도 각계 전문가, 공무원,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법령개정위원회를 구성해 현실과 괴리된 제도와 법은 빨리 뜯어고쳐야 한다. 더 이상 '악법도 법이다'라는 패배주의적 화두가 나와선 안된다. 악법은 당연히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최용석 변호사 오세오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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