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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50주년]<2> 한강이남 이전 추진 美2사단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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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50주년]<2> 한강이남 이전 추진 美2사단 르포

입력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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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감정이나 사단 이전 문제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저로서는 상관없는 일입니다."17일 경기 포천군 영중면 미 8군 다목적 종합사격장. 인디언 마크를 부착하고, 탱크 사격 훈련에 열중하던 미 2사단 장병들은 말을 아꼈다. "어떠한 적대적인 환경이 닥치더라도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하러 왔다"는 1여단장 앤서니 이랄디 대령의 말처럼 이들에겐 훈련만이 최고의 목표인 것 같았다.

장병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 '출생은 우연(Live by Chance), 사랑은 선택(Love by Choice), 살인은 직업(Kill by Profession)'이라는 구호처럼 전투력 이외의 것은 관심 밖 사항인 듯 했다. 커티스 로버츠 소령은 "사단장이 최근 '2사단은 인계철선(tripwire)이 아닌 라인배커(linebacker)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미식축구에서 라인배커가 공격과 수비, 좌우 양쪽을 자유자재로 오가듯 한국군과 연합해 어떠한 작전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이 2사단의 새 역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의 화력부대

세계 최고의 화력 부대로 꼽히는 미 2사단이 한국과 맺은 인연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4일 선발부대로 한반도 파견명령을 받은 2사단은 그 해 8월부터 부산에서 본격적인 전투에 참가했다.

53년 7월 27일 휴전 소식을 전투가 가장 격렬했던 '철의 삼각지' 중간지점에서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2사단의 전공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잠시 미국 조지아주 피트 루이스로 철군했던 2사단은 65년 한국으로 되돌아와 북한에 대한 전쟁 억제력을 갖춘 유일한 지상군 부대로 활동하고 있다.

의정부(사단 본부), 동두천, 파주, 문산 등에 주둔한 2사단은 북한군이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이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이전한다는 방침을 밝히자 이 일대가 술렁이고 있다.

1단계로 수십 군데로 흩어져 있는 부대를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 의정부의 캠프 레드클라우드로 집결시킨 뒤 최종적으로 한강 이남의 평택이나 오산으로 이전시킨다는 것이 이전 청사진이다.

술렁거리는 부대 주변

그러나 한국에서 1년여 복무하는 미군 장병 개개인에게 이전계획은 대개 큰 관심사가 아닌 듯했다. 한국 복무 10개월째인 윌리엄스(20) 일병은 "두 달 후에 한국을 떠날 예정이라 옮기든 말든 상관없다"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공병부대의 카투사 서모(22) 상병도 "이전 절차가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복무 1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가는 미군이나 의무 복무기간을 채우면 제대하는 카투사나 모두 무관심하다"고 부대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결혼 1년째로 미국에 아내를 두고 혼자 복무 중인 로벨(21) 상병은 "주거시설만 확보되면 독일처럼 한국에서도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북한의 포 공격을 직접 받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간다면 사기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반겼다.

미군 부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에게 부대 이전은 날벼락과도 같은 것이다.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20년째 가방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58·여)씨는 "지난 해부터 반미 시위를 자꾸 하니까 미군들이 못마땅해 한 것 아니냐"면서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미군부대 소방서에서 23년째 근무해 온 조용철(57)씨도 "직원들이 벌써부터 감원 걱정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2사단은 "최악의 해외 근무지"

한국계 미군으로 5년째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출신 P(35) 상병은 "대부분의 미군에게 훈련도 많고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도 없는 2사단은 최악의 해외 근무지"라고 말했다. 캠프 케이시에서 복무 중인 텍사스 출신 M(22) 일병도 "부대 밖으로 나가도 바 외엔 놀 곳도 없고, 차가 없어 너무 불편하다"고 불평했다.

남편이 전투병으로 근무하는 필리핀계 미셸 라군(25·여)씨는 "훈련이 많아 남편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다. 1년 복무기간을 빨리 채워 하루 빨리 여기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한 미군 관계자는 "미군들 사이에서는 '주거시설이 부족한 한국에서 복무하느니 차라리 전역하겠다면서 3개월마다 1개 대대(1,000여명) 병력이 전역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만큼 준 전쟁터로 인식되는 2사단은 근무여건이 열악하다.

최근엔 촛불시위로 반미감정이 거세져 미군들은 복무에 신경질적인 반감까지 갖게 됐다. 동두천 캠프 호비에서 보병으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진 트레직(32·여)씨는 긴 넋두리를 늘어 놓았다. "남편이 5년 전 인근 부대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을 때보다 한국인들이 훨씬 덜 우호적이라고 말한다. 반미 시위를 외치는 학생 대부분이 미국으로 이민 가기를 원한다고 들었다. 반미 감정이 클수록 영어를 더 배우려고 하고, 군 복무도 꺼리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지역 경제 불안

익명을 요구한 미군 관계자는 "미군들이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에 관한 좋은 얘기를 하느냐, 나쁜 얘기를 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왜 그들을 민간 홍보대사로 활용할 생각을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미군 부대 군무원인 한국인 D씨는 "반미 시위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부대 안으로 침입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그런 모습은 한국인들은 한국인이 아니면 배척하는 것 같은 선입견을 심어준다"고 우려했다.

2사단 이전을 바라보는 현지 주민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전체 토지의 3분의 1을 미군에 제공하고, 주민의 5분의 1 정도가 미군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동두천시는 이전을 반대하기도, 찬성하기도 애매한 입장이다.

박수호(48) 동두천시 주한 미군 주둔 관련 현안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미군 캠프는 그대로 남고, 미군만 떠난다면 동두천 경제에 치명적"이라며 여론조사 등을 통해 대안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 미군 관계자는 "2사단 이전 문제 등 한미동맹은 과거 50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말로 향후 간단치 않을 변화를 점쳤다.

/동두천·파주·포천=정원수 기자 nobleliar@hk.co.kr

■ 美 2사단 공보실 존 커브 병장

"앞으로도 한·미 유대관계가 과거 50년처럼 돈독해져 제 아들까지 한국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미 2사단 공보실 존 커브(34·사진) 병장은 2대째 주한 미군으로 복무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아버지 허만 커브(79·미 테네시주)씨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부터 약 1년 동안 미군 수원 802기술비행대대 A중대, '철의 삼각지대' 등에서 근무했다. 막내 아들인 존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한국에서 복무하던 시절 얘기를 자주 들으면서 한국에 대한 꿈을 키워 왔다. 5년 전 육군에 입대한 그는 지난 해 9월 한국 발령을 받아 소원을 이뤘다.

커브 병장은 "아버지는 전투가 치열하지 않고 평화로웠던 수원 근무 시절 얘기를 많이 하셨다"면서 "전쟁으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영향 탓인지 커브 병장의 보직은 2사단 정훈 하사관. 부대 신문인 '인디언 헤드' 취재기자로 활동하는 그는 "반미시위는 한국인과 미군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현상"이라며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이해를 촉진시키면 더 돈독한 관계가 조성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3살 된 아들,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게 한국 복무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며 "주거시설만 확보된다면 좀더 좋은 여건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미동맹 50주년을 맞은 소감을 묻자 그는 "한미동맹과 우정이 돈독해져 50년 안에는 통일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는 이어 "2사단은 전쟁 억지와 전투력 향상에 큰 역할을 해 왔다"면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한국인과 미군은 어깨를 나란히 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정부=정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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