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엮음 우리교육 발행·전 6권·각 6,500원"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벌서 1년이 다 가버렸다. 얼마나 세월이 빠르면 2학년에서 3학년이 된 지가 엊그저께만 같다. 나도 이젠 늙어갈 때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세월이 빠르니…"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쓴 글이다. 그 나이에 벌써 늙어갈 때가 멀지 않은 것 같다니, 웃음이 나온다. 월간 '우리교육'이 펴낸 학년별 어린이 글모음 3학년 편에 실린 글이다.
'우리교육'은 1991년부터 전국의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좋은 학급문집을 공모했다. 그렇게모은 10년치 570권 중에서 어린이 마음이 잘 드러난 글을 골라 책을 펴냈다. '개미보다 거인이니까요'(1학년), '뭘 사오라고 하셨더라?'(2학년), '미움받는 나'(3학년), '땅콩이라 부르지 말아 줘'(4학년), '학원 가기 싫어!'(5학년), '내가 좋아하는 아이'(6학년) 등 여섯 권이다.
엮은이는 20여 년 간 어린이들을 가르쳐 온 서울 삼전초등학교 이주영 선생님. 사투리나 입말 등 아이들이 쓴 글을 그대로 살렸다. 책 맨 뒤에는 학년별 글쓰기 지도 요령도 붙였다.
1학년의 글은 천진난만하다. "아침에 똥 싸는데 세상이 뚫리고 지구가 뚫리는 거 같이 똥구먹이 시원했다"는 표현은 재미있고, 흰 토끼 밥을 빼앗아 먹은 검은 토끼를 때려주고는 "참 아팠겠다"고 말하는 마음도 예쁘다.
어른들 때문에 마음을 다치는 어린이들의 슬픔이나 분노도 보인다. 잔소리하는 할머니하고 싸웠다가 혼난 3학년 아이의 글을 보자.
"아빠는 뭐라 하고, 엄마는 엄마라도 부르지도 말고 이분 저분 하라고 했고, 할머니께서는 나보고 집안에 망할 년이라면서 확 죽어버리라고 했다. 그 말에 너무나도 섭섭하고 나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 너무도 믿기지가 않았다. 누가 내 편이 돼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엄마, 할머니가 무섭고 싫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은 5학년 아이는 이렇게 썼다. "잔소리의 고향은 어딜까/이리 가도 잔소리 저리 가도 잔소리/이 놈의 잔소리! /물러가라! /잔소리의 고향은/엄마 입이다/숙제 안 한다고 잔소리/동생이랑 안 논다고 잔소리/잔소리는 정말 싫다."
6학년 아이들은 이성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오빠의 연애 편지를 훔쳐보다 들켜서 맞은 아이. 도대체 사랑이 뭘까. "오빠가 좋아하는 그 언니는 누굴까. 이쁠까? 궁금하다."
한권 한권 읽다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린이들의 마음도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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