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 살다 보면 현재는 과거의 결과라는 것을 거듭 깨닫게 된다. 현재 케냐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은 케냐가 겪어온 역사를 배제하고선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처음 케냐에 도착했을 때의 문화적 쇼크는 2년 동안 살면서 그들의 역사를 알게 되자 점차 이해의 시선으로 바뀌게 되었다.케냐의 고용인 한달 인건비는 100달러가 채 안되어 외국인들은 대부분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고용한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는데 덕분에 쉽게 케냐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국적 관습과는 물론이고 일반 상식과도 전혀 다를 때가 많아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케냐 사람들은 스스로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다. 또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여간해서는 뛰지도 않는다. 외국인과의 접촉이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렇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역사적 연원을 알고 보니 나름대로 근거가 있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과거, 영국인 주인들이 케냐인 노예가 주인의 기분을 파악하지 못하고 먼저 '굿 모닝'하고 인사하면 총을 쏘아 죽였고, 뛰어 다니면 자기들을 해치는 줄 알고 또 총을 쏘았고, 잘못을 추궁할 때 잘못을 인정하면 잘못했다고 총으로 쏘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현재 케냐인들의 관습은 살아 남고자 하는 노력의 역사적 결과인 셈이다.
또 케냐 여성들 중에는 결혼도 하지 않았으면서 아이를 낳아 남편 없이 아이만 키우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케냐의 문화에서는 결혼을 안하고 혼자 사는 것보다는 아이를 낳고 혼자 사는 것이 떳떳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역시 40개가 넘는 부족으로 이루어진 케냐의 경우 부족 개념이 도덕 개념보다 강할 수밖에 없고, 부족민의 수를 늘려 강해져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타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그 사람의 과거, 주변 상황을 알고 나면 도움이 되듯이, 사회 현상도 나의 주관적인 시각으로만 재단하기 보다는 역사와 문화를 폭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36년의 일제 통치를 겪고 많은 부분이 왜곡되었는데,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영국의 통치 하에서 온전한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가질 수 없었던 케냐 사람들의 상황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자는 이성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낯선 현상에 당황과 짜증이 반복된다. 그 때마다 나라는 인간, 나아가 개인이란 얼마나 상황에 의해 지배를 받는 나약한 존재인가 절감하며 반성이 뒤를 잇는다.
유 은 숙 케냐·대우인터내셔널 나이로비 지사장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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