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역대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와 영녕전 제사에 쓰이는 종묘 제례악의 기악과 가사(악장), 무용(일무) 등이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왜곡됐다는 주장이 국악계에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종묘제례보존회는 19일 오전 10시부터 7시간에 걸쳐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종묘제례악에 관한 학술 토론회'를 열어 논란 정리에 나선다. 이종숙 한양대 생활무용예술학과 강사와 남상숙 원광대 객원교수가 '일제에 의한 왜곡'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송혜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와 이숙희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가 각각 국악과 무용 분야의 '왜곡'이 정리됐다는 내용으로 이를 반박할 예정이다.이번 논란은 전통무용 연구가인 이종숙씨가 2월 용인대 무용학과 박사학위 논문인 '시용무보의 무절 구조분석과 현행 종묘일무의 비교연구'에서 "일제가 조선 왕실을 고의적으로 비하하기 위해 왜곡한 종묘제례의 가사와 무용이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그대로 계승됐기 때문에 원형 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국립국악원 윤미용 원장은 3월 "그 문제는 이미 예전부터 학계에서 지적이 있었다"며 "현재 연주되고 있는 종묘제례악은 오래 전에 원래의 것을 복원, 이미 1980년에 개정된 종묘제례악 악보가 나왔다"고 밝혔다. 국악원이 2000년에 출간한 '신역 악학궤범'(이혜구 역주)에서도 가사 및 복식 부분은 원작 그대로 표기돼 있다.
이로써 일단락된 듯하던 이 문제는 최근 한국음악 이론가인 남상숙씨가 '종묘제례악보 고찰―세조실록악보에서 현행까지'라는 논문에서 "종묘제례악의 악현(기악) 부분이 일제 시대를 거치며 원형이 훼손됐다"고 가세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이 논문은 "1음 1박 식으로 해석되던 종묘제례악을 비롯한 궁중 음악이 일제 때 변형됐다"며 "살 부분에 해당되는 선율은 그대로지만 음악의 기둥에 해당하는 절주(박절)가 변했기 때문에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일제가 조선 왕조의 이념을 상징하는 종묘 제례악을 고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라며 "조선왕조 내내 쓰였던 우리 악기인 삼현(거문고, 가야금, 향비파)을 없애고 당악기인 아쟁을 남긴 점, 네모난 나무상자 모양의 '축'과 엎드린 호랑이 형상의 '어'는 함께 편성되는 법인데 '어'를 없애고 '축'만 남긴 점 등은 왜곡의 한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해방 이후 재현된 궁중음악을 가치 없는 것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한편 이종숙씨는 "가사만 바꿨다고 원형이 회복된 게 아니다"며 "조선시대 장악원에는 좌방과 우방이 있었는데 양인 출신인 좌방의 격이 높았고, 천민 출신인 우방은 제사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는데 일제시대를 거치며 좌방의 맥이 끊기고 제례를 잘 모르는 우방이 종묘 제례악을 전승하면서 잔치 의복을 쓰는 등 원형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립국악원측은 '세종대왕 시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게 전통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숙희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일제가 고의적으로 종묘 제례악을 왜곡시켰다는 문헌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왜곡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원형을 중시한다면 '악학궤범'과 '시용무보'에서 종묘제례의 복식이 다른 것은 어떻게 하느냐"며 "좌방, 우방을 나눈 것은 고려시대이지 조선시대에는 악공과 악생으로 나뉘었고 1913년에는 그 구분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고종 황제 시절 772명에 이르던 연주자들이 1915년을 지나면서 46명으로 줄었고 이것이 전승이 힘들어진 이유지 일제가 악현 부분에 고의적으로 개입한 흔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송혜진 교수도 "일제강점기의 종묘제례악의 악장 변화는 가슴 아픈 시대상이나 이미 수정되었으며, 악기 편성이나 음악의 변천은 일제의 인위적인 '개입'이나 '왜곡'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랜 연주 전승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변화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맥이 끊길 뻔한 종묘제례악은 1945년부터 국악원이 생긴 51년까지 국악인들이 '구황궁 아악부'를 만들어 이어온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며, 이 전통이 있었기에 현재의 종묘제례 연행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국악인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악인은 "종묘 제례악의 악현 부분이 변형되었다는 것은 타당성이 크지만, 사람의 손을 통해 전승되는 전통을 예전 그대로 하라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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