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한강대교. 주변 교통이 갑자기 정체되기 시작했다. 한강대교 아치교각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주장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시위대에 점거된 것. 8시간 동안 계속된 시위에 많은 경찰병력이 닭 쫓던 개처럼 마냥 아치만 쳐다본 채 대기했고, 편도 4개차로 중 절반이 통제돼 교통혼잡을 이뤘다. 사고를 예방키 위해 119구급대가 출동했고, 도로에는 추락대비 매트가 깔리고 한강에는 물에 빠지면 건져낼 구조선이 교각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서울시가 한 달에 1,2회 꼴로 벌어지는 자살소동과 한강추락을 볼모 삼는 각종 시위로 몸살을 앓는 한강대교에 새로운 자살방지 장애물을 설치하기로 했다. 가로 96㎝ 세로 250㎝의 '원형막대 베어링판'을 다음주 중 다리 북단 1곳에 시범설치키로 한 것. 손목굵기의 직경 38㎜ 파이프를 60여 개 나란히 배열한 베어링판은 러닝머신의 발판처럼 회전력이 높아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없도록 미끄럽게 설계돼 있다. 시는 시범설치 효과를 점검해본 후에 48개 아치 빔 전 구간으로 확대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가 이번에 도입한 원형막대 베어링 판은 자살방지 장애물로 '3세대'격이다.
1세대 장애물은 1995년 처음 도입한 점액질 윤활유(그리스) 바르기.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이 방법은 아치 오르막에 미끄러운 윤활유를 발라 접근을 막도록 고안됐다. 비에도 잘 씻겨 내려가지 않고 비교적 저렴하다(교각 전체 설치에 300만원)는 장점이 있지만 빙벽 등산용 아이젠을 장착한 신발 등을 신고 올라가는 경우는 속수무책이었다.
윤활유 다음으로 시에서 고안한 아이디어는 '볼 베어링판'. 주판모양처럼 지름 12㎝의 공 128개가 가로 96㎝ 세로 2m 규모의 판에 빼곡이 박혀있는 형태로 2001년 1월에 한강대교 아치 1곳에 시범 설치됐다가 효과가 크지 않아 작년 6월 떼어냈다. 서울시 건설안전본부 관계자는 "볼 베어링판의 공 사이에 신문 등을 구겨 넣거나, 판 전체를 청테이프로 휘감고 오르는 방법까지 등장했었다"고 말했다.
한강대교는 인도에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의 아치형 빔으로 꾸며져 있어 사회적 이목을 끌려는 이들에겐 가장 적합한 장소로 통한다.
이들의 목적은 가정불화, 신병비관, 억울함 호소 등 개인적인 동기가 대부분이고 최근 들어 전국농민회 시위처럼 자신들의 주장을 이슈화 하려는 단체들도 자주 찾는다.
북한강파출소 김치억 소장은 "아치 위에 오른 사람치고 진짜 물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개인적인 문제로 오른 이들은 대체로 설득과정을 통해 3시간이면 해결되지만 데모하러 온 사람들은 내려올 생각을 안 해 골치"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그러나 원형막대 베어링판도 자살소동을 원천적으로 막기엔 한계가 있다고 실토한다. 밧줄을 걸거나 이삿짐 사다리차 등을 동원하는 등 기를 쓰고 기어오르려는 사람들을 막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고기능의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하거나 아치 위에 감지센서를 부착해 올라가는 것을 사전에 알아내 초기에 대처하는 등의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자살소동을 막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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