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 정권출범 초기에 '완장 찬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군사정부시절에도 민주정부에서도 개혁을 빙자한 완장 찬 사람들이 있었다. 정권이 하늘을 찌를 때 이들은 기고만장했고, 정권이 쇠퇴하자 일부는 비리로 처벌받고, 나머지는 슬며시 완장을 풀어버렸다. 그래도 모두들 완장을 차고 싶어한다. 완장은 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지 6개월, 취임한 지 4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많은 반목과 갈등이 있었다. 세력의 재편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소지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은 더 이상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아니다. 이미 노 대통령은 다수당인 야당, 여당 내부, 시민단체, 언론 등 많은 부문에서 견제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소수파이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개혁의지를 의심하는 주변부에 많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혁은 제도와 시스템에 의한 안정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만 개혁의 지속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줄곧 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혼선이 있다. 대통령이 개혁의 최종 목적은 말하고 있지만 중간 목표와 달성 수단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 정부에 개혁의 청사진이 없다고 사람들은 비판한다. 개혁의 형성 및 집행자인 공무원들에게 이러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공무원은 개혁의 주체로 나서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따라가기도 버거운 것이다.
기술관료(technocrat)인 공무원들에게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개혁의지뿐만 아니라 청사진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개혁 청사진도 없이 노 대통령은 공무원집단에 자신의 개혁을 실천하기 위한 외부인력을 수혈하고 있다.
이것이 최근 부처별로 임명하고 있는 장관보좌관제도이다. 이들은 대부분 전문성이 아닌 정당(민주당)에 대한 충성심에 의해 임용된 정당인(정치인)이다. 전문성에 기초하지 않은 보좌관의 역할은 '완장 찬 외부인'에 불과하다. 이들에 대한 공무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물론 대통령이나 장관의 의지가 공무원집단에 잘 전달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훼손을 가한다면 공무원조직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오랜 동안 관료제는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가치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그 효율성을 지킬 수 있었다. 최근 관료제의 비효율성은 '경쟁과 투명성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노 대통령은 이에 더해 중간공무원집단 내부에 개혁세력을 자발적으로 만들도록 하고, 나아가 이들간의 연대세력화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야당은 공직의 사유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직의 정치화이다. 노 대통령이 개혁을 명분으로 공무원조직을 정치화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제반 과정을 청와대가 주도하게 되면 부처 내 의사소통은 사라지고, 오히려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게 된다. 이것은 '자율과 분권'을 지향하는 참여정부의 이념과 배치된다. 공무원집단의 자발적 개혁노력이 미진하다고 해서 거기에 정치화한 외부인력을 배가하는 경우 그 조직은 사실상 와해되고 만다. 공무원사회는 안정성에 기초해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개혁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대통령 임기 5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너무나 멀고 험난하다. 전사회적 개혁보다는 우선순위를 정해 개혁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개혁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의도를 강변하기 이전에 자신의 대화방법이 잘못되지 않았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권 해 수 한성대 교수·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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