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6월18일 밤 영국 BBC 방송은 이 나라에 망명한 프랑스 육군 소장 샤를 드골의 호소를 내보냈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고 반(半)주권 국가가 된 직후였다. 그 뒤 수없이 인용된, "프랑스는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불길이 꺼져서는 안 될 것이고, 또한 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라는 선언을 담은 이 방송 연설이 프랑스 사람 대다수에게 즉각 전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드골이라는 이름조차 당시 프랑스인들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그러나 드골의 이 날 연설은 20세기 프랑스사에서 '피어린 영광'의 출발점으로 기록됐다. 이 연설을 기점으로 독일 점령군에게 맞서는 레지스탕스가 공식적으로 시동을 걸었고, 프랑스는 페탱 원수가 이끄는 본토의 프랑스국과 드골이 망명지에서 이끄는 자유프랑스(뒤에 '싸우는 프랑스'로 개칭)로 양분되었다. 이제 프랑스는 더 이상 '불가분의 단일한' 공화국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는 파리에 입성해 프랑스 역사의 정통성을 이었다.
프랑스어로 '저항'을 뜻하는 레지스탕스는 일반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점령된 프랑스 네덜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그리스 폴란드 소련 등 유럽 국가에서 비합법적으로 전개된 항독(抗獨) 저항 운동을 가리킨다. 그러나 좁은 뜻의 레지스탕스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프랑스에서의 저항 운동을 가리킨다. 무신론자와 기독교신자, 좌파와 우파를 묶어 세우며 반파쇼 세력 전부를 망라한 프랑스 레지스탕스는 1944년 초 그 조직원이 10만여 명에 이르렀고, 종전이 다가옴에 따라 프랑스국내군(FFI)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개시와 함께 전국민적 무장 봉기의 견인차가 되었다.
고종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