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올라 있는 뮤지컬 '그리스'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관객은 무대 구석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군무를 추고 있는 개그맨 홍록기의 모습을 찾아내기 어렵다. 인기 연예인이 뮤지컬에 출연하면 주연을 맡을 것이란 지레짐작과는 달리 1950년대 미국 로큰롤 문화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꿈과 고민을 다룬 '그리스'에서 홍록기는 고등학교를 몇 년째나 다니는지 아무도 모르는 조직의 리더 케니키 역을 맡고 있다.왜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이런 작은 역도 마다하지 않았을까. 한동안 너스레를 떨던 그는 "아끼는 후배들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연극과 출신이어서 원래 하고 싶던 일이기도 해서 시간 나는 대로 한다"고 말했다.
그의 후배 사랑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후배들은 지난해 '록키 호러 쇼' 공연 당시의 일화를 입을 모아 전했다. "공연이 끝나면 오빠 주도로 MT를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오빠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미안하다며 MT 장소로 데킬라를 보내셨어요. 배우들 모두 큰 달력 하나에 돌아가며 오빠에게 편지를 썼지요. 후배들에 대한 인정이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월세를 대신 내주는가 하면 병원비, 생활비도 슬쩍 내 줍니다. 공연 때나 연습 때 뒤풀이 술값도 다 내고요."
좋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아 하는 일을 하기 위해 그는 이번 공연에서 잔뜩 몸을 낮추었다. "케니키 역은 캐릭터가 잘 맞는다 싶어서 자청했어요. 배역 비중에 맞춰 연기를 해야죠. 연예인은 기본적으로 대중에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고, 연예인이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띌 가능성도 있지만 이번 공연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면 제대로 성공한 겁니다." 공연 중 그는 튀지 않기 위해 끼를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공연이 끝난 후 팬 사인회에서도 주연 배우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목소리가 방송 때보다 많이 쉰 듯했다. "병원에서 성대 결절이라고 하는데 수술 받고 한 달은 쉬어야 한대요." 하긴 인터뷰 도중에도 후배들의 이것저것을 챙기는 등 사실상의 조연출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마땅히 쉴 시간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도 농아잡지 기자와 필담으로 인터뷰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그리스'의 매력과 연출가의 실력에 대해 또박또박 써준 후 말미에 "행복하게 해드릴께 오세용∼"이라는 문구를 적었다고 전하는 데서는 여전히 개그맨 홍록기였다.
/글·사진=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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