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이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17일 한나라당 최고회의에 참석하는 한 당직자에게 '공산당 허용' 발언을 이유로 정말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할 것인지를 묻자 그는 "다 알면서 그런 걸 물어보느냐"는 표정으로 멋쩍게 웃었다. 며칠 전부터 "대통령 탄핵 여부를 중점 논의할 것"이라고 예고됐던 이날 회의는 '대통령 국기문란발언 대책위'라는 이상한 기구를 만드는 선에서 면피성 결론을 냈다. 예상대로였다. 애당초 '공산당 허용' 발언 하나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는 12일 의원총회에서 격앙된 일부 의원의 탄핵요구가 나오자 마치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최종 결정을 최고위원회의로 넘겨 여론의 시선을 끌었다.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쇼를 벌인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이런 식의 정치공세 소재가 되기에는 너무 무겁다.
한나라당의 이런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해임건의안, 고영구 국정원장 사퇴권고결의안, 윤덕홍 교육부장관 해임건의안 제출 방침이 줄줄이 공수표가 됐다. 이들 사안의 경우 한나라당은 대통령 탄핵문제보다 한술 더떠 의총이나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론으로 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면 "상황이 변해서…"라는 납득 못할 이유를 대거나, 심지어 "원래 당론이 아니었다"고 우기면서 모두 '없던 일'로 해버렸다.
당의 방침을 실제로 추진하느냐, 안하느냐는 전적으로 한나라당에 달렸다. 그러나 무조건 저질러놓고 나중에는 말을 바꾸는 용두사미(龍頭蛇尾)의 행태를 반복하는 것은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대통령의 말'만 탓할 게 아니라 자신의 입도 한번 점검해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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