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가 팰 무렵, 버드나무 늘어선 고향길이 기억 저편으로부터 되살아 납니다. 아무도 없는 오후, 정적마저 감도는 길. 정적은 고독과 서러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한줄기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면 그 가지에 달린 잎들이 손짓을 합니다. 나뭇잎의 흔들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도 흔들리는 강물이 되어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립니다.
그 무렵이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찾았던 섬, 가덕도. 배에서 내려 마을로 가려면 얼마 동안 걸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즐겼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그 섬에도 아는 분이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분과 술잔을 나누시고 나는 술집 담 너머 느티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무성한 이파리들은 바람에 나부끼며 반짝임의 강물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멀리 지평선이 생기고, 바라보기 아득해졌습니다.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고향 집 액자 속 사진에서만 우리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가끔 아버지 음성이 듣고 싶어 애를 써보지만 도리 없습니다. 세월의 벽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어릴 때는 어디서나 볼 수 있던 보리밭. 고향 집에서도 창문을 열면 보리밭이 보였습니다. 보리밭에는 숨막히는 더위가 있지만 보릿대의 투명한 푸르름은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문득 보리피리의 시인 한하운이 생각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한센병에 걸렸고 소록도로 가는 길은 잔인했습니다. 6월의 보리밭과 황토 언덕에는 원색의 푸르름과 원시성이 출렁이는데 그의 육신은 떨어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랑새가 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파랑새가 되어 아름다운 고향 산천을 느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아픔을 노래했습니다.
지금은 보리가 팰 무렵, 그러나 보리밭은 우리 곁에 없습니다. 남도의 어느 자락에 가면 있을까요? 버드나무 늘어선 고향 길도 사라졌습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떠밀려 내 마음 속에서마저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덕도, 그 섬에 가 아버지의 자취를 떠올려 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개발로 뜯겨버렸을지도 모를 면 소재지 다방도 들렀으면 합니다. 보리밭도 보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보리가 팰 무렵이면 병인 양 지난 날의 흔적들이 내 안에서 살아날 것만 같습니다.
/우무영(46)·부산 동래구 명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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