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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 지은희 여성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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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 지은희 여성부 장관

입력
200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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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면 빨간색이 떠오른다구요? 정열적인 인상을 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운동가 시절 머리띠를 두른 모습'이 연상된다는 얘기엔 동의할 수 없어요. 선언문을 낭독하거나 어깨띠를 두른 적은 있지만 단 한번도 머리띠를 두른 적은 없었습니다. 그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왕이면 차분하면서도 강한 여성성을 상징하는 보라색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NGO운동을 이끌던 시절 '지칼'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답게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제정, 보육업무 관할 등 여성부와 여성계의 숙원 해결에 대한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들 현안과 관련한 사회적 반대와 논란이 만만치않지만 이미 상당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취임 100일을 갓 넘긴 13일 지 장관을 만나 참여정부의 여성정책 방향과 소신, 시민사회단체에서 제도권으로 들어온 소회 등을 들어보았다. 이 자리엔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IF)'의 권혁란 편집장이 동석했다.

―NGO에 30년 가까이 투신하며 정부를 비판해오다 이제는 입장이 뒤바뀌어 여러가지 차이를 느낄 법 한데요.

"NGO와 정부의 입장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여성이 행복한 나라'를 표방하는 만큼 제가 하던 일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120명의 인력과 연 400억원을 넘는 예산이 있어 조건이 좋아진 셈이죠. 그것은 곧 더 많은 책임을 의미하지만…."

―간혹 '재야에 있을 때 정부에 너무 과하게 요구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신 적은 없나요.

"NGO는 본래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현실보다는 조금 앞선 요구를 해야 합니다. 여성부의 일에 대해서도 원하는 것을 확실히 요구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NGO는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제안을 해주고 정부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확실하게 비난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같은 것을 추구한다면 협력해야지요. 그것이 진정한 NGO―정부 파트너십입니다."

―현재 여성부의 가장 큰 현안은 호주제 폐지일 겁니다. 5월 '호주제 폐지 특별 기획단'이 발족해 일단 큰 걸음은 뗐지만 이후 진척상황이 다소 더딘 것 같은데요.

"'기획단'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호주제를 폐지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뜻합니다. 현재 이미경 의원이 의원입법 형식으로 발의한 개정안에는 호적제도 변경사안에 관한 것이 빠져있습니다. 정부안은 폐지 후 변경사안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게될 겁니다. 9월까지는 구체적인 정부안이 나올 것입니다."

―법무부 등 타부처와 여성부의 입장이 다소 다른 것 같은데요.

"이견이 있는 부분은 '부성강제'조항 삭제 정도입니다. 여성부는 '자(子)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것을 '자의 성은 부부가 합의해서 정한다'로 바꾸려는 것인데 유림 등의 반발 때문에 100% 밀어붙일 수 있겠냐는 것이죠. 어쨌든 법무부도 근본적으로 호주제가 폐지돼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여성부가 전통적 가족관계를 무시하고 너무 급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는데….

"호주제 폐지가 오직 여성의 권리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 자체가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세살짜리 손주가 칠순 할머니의 호주라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지난해 UN이 발표한 우리나라 여성의 권한척도가 몇위인지 아십니까. 63개국중 61위입니다. 호주제가 폐지돼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해야 할 숙제는 많습니다.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남성 중심의 혈통주의는 물론 바뀌어야하고요."

―성매매 방지법 제정에 남다른 의욕을 갖고 계신데 원칙론과 현실론을 조화할 묘안이 있는지요.

"각 나라의 특성에 따라 성매매에 대한 접근도 틀립니다. 우리나라는 태국 다음으로 성매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나라입니다. 국민 모두가 심각하게 자성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성매매에 유입되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남자아이까지 말이죠. 군 중심의 남성문화, 그리고 군사정권이 조장해온 3S정책, 즉 섹스, 스포츠, 스크린 육성 정책 등의 영향으로 이제는 성매매가 범죄라는 생각이 아예 없어지고 오히려 남성다움의 표현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매매를 통해서 남성의 인권도 그만큼 피폐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성매매를 근절하는 것이 불가능해 일정지역에 집촌을 만들어야 한다는 등의 반론이 적잖아 입법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는데요.

"성폭력과 성매매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성매매가 횡행하는 나라엔 성폭력도 많아요. 그리고 성매매를 금한다고 성행위 자체가 없어지겠습니까? '우리 아이의 문제'라고 생각해보시면 답이 나올텐데요…. 이건 정책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되는 문제입니다. 실질적인 '액션 플랜'이 있어야 해요. 현재 총리실 산하에 '성매매방지 대책 기획단'이 만들어져 곧 첫 회의에 들어갑니다. 검찰 경찰은 물론 문광부 재경부 등 각 부처가 실질적으로 성매매를 줄일 중장기 계획을 만들어야 합니다."

―보육업무의 여성부 이관에 대해 '직원 120명의 초미니 부처가 복잡다단한 문제를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많습니다.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욕심을 부린다는 것이죠.

"왜 여성부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3년전 여성부가 처음 출발했을 때 서른 세 개 기관의 인력이 합쳐 정체성 등에서 부족한 측면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체계가 잡혔고 작은 부처가 갖는 장점도 분명 있습니다. 또한 여성부가 업무를 가져 온 후에도 정책과 예산은 우리 것이지만 집행은 지자체 몫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학자인 이효재 선생을 존경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선생이 여성운동 1세대라면 지 장관은 2세대로 많이 일컬어지는데요… 지금 자라나고 있는 후배 여성운동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여성운동 하는 사람 중에 이효재 선생님의 제자가 참 많습니다. '분단시대의 여성'이라는 관점을 갖고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맞도록 여성운동을 이론적으로 잘 정리하신 분입니다. 또한 여성운동이 단순한 여성보다 억압 받는 노동자나 농민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지금도 고향인 진해로 내려가셔서 지역 여성을 돕고 강의하고 계시지요. 선배 여성운동가들이 이처럼 조직적인 이론을 가지고 전국적으로 활동했다면 지금의 젊은 여성운동가들은 개인의 창조성을 더 강조합니다. 영향력으로 볼 때 이 같은 게릴라식 운동 방식이 클지 모르겠지만 정치나 제도를 바꾸는 데는 좀더 조직적인 운동이 필요합니다."

―여성 장관이 네명이어서 협력이 잘 될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여성운동에 대한 인식이나 경험이 모두 있어서 잘 맞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소위 '코드'가 잘 맞습니까. 100일 정도 지났는데 잘 하고 있습니까.

"대통령에 대한 제 느낌은 상당히 탈 권위적이고 열려있다는 겁니다. 인간적인 매력이 많은 분이에요. 젊은 활기를 가지고 있으니 조금만 더 두고 봤으면 좋겠습니다. 100일만에 평가하기는 좀 이른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도 국민이 사랑하고 믿는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데 여러 곳에서 능력을 제한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장관들도 조금만 더 지켜봐 주세요. 장관들, 정말 괜찮지 않습니까?"

/대담=이유식 생활과학부장

권혁란 이프편집장

정리=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 지은희 장관은 누구

자그마한 키와 운동가 시절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에 '작은거인'으로 통하는 지은희(56) 장관은 1996년부터 6년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를 지내며 한국여성운동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1965년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후 동양시멘트공업에 8년간 근무하며 열악한 현실에서 고생하는 여공들을 보고 여성운동에 투신했다.

여성단체 외에도 노사관계개혁위 공명선거실천운동연합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여성다움 남성다움 인간다움' '여성 삶 정치' '우리들의 의식, 우리들의 힘' 등 세 권의 저서를 남겼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영길(56) 상임이사가 남편이며 외동딸 해연(23)씨는 이화여대 철학과에 재학중이다. 결혼식 당시 파격적으로 남편과 동시 입장해 화제를 낳았으며 외동딸의 보육이나 양육도 부부 중 '시간이 나는 사람'이 맡았을 정도로 평등가족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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