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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주인과 때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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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주인과 때밀이

입력
200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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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분들(이하 때밀이)이 수영팬티를 입는 까닭이 뭘까. 한 친구가 물었다. 답은, 팬티를 입지 않으면 누가 때밀이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뭔가 대단한 답을 기대하고 있던 우리는 김이 빠져버렸다.얼마 전, 저녁 늦게 단골 대중탕에 갔다. 탕에 몸 좀 담그려니까 벌써 마무리 청소가 시작되었다. 업계의 관습대로 때밀이 아저씨가 긴 솔로 벅벅 탕의 바닥을 닦고 있었다. 역시 숙련된 동작이었다. 반대편에선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노인 한 분이 역시 긴 솔로 탕 벽을 닦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 목욕탕의 주인이었다. 그때 그 친구가 또 퀴즈를 냈다. "목욕탕 주인이 왜 팬티를 안 입고 일하는지 아냐?" 여러 답이 나왔다. 탕 안이 더워서. 수영 팬티가 없어서. 그는 이번에도 실쭉 웃으며 답을 말해주었다. "자기를 때밀이로 생각할까 봐 안 입는 거야."

정리하면 이렇다. 때밀이는 손님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팬티를 입고 주인은 때밀이와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안 입는다. 결과적으로 주인은 손님과 같아진다. 우리와 똑같은 복장의 주인이 솔을 들고 일하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 우리는 서둘러 몸을 닦고 탕에서 빠져나왔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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