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73) 성공회대 총장과 김승연(51) 한화그룹 회장.한 사람은 가장 영적인 길을, 또 한 사람은 가장 현실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 40여년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는 성공회대가 '작지만 우수한' 대학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2000년 초, 김 총장은 대한성공회 최고위직인 대주교를 정년퇴임하고 모처럼 아내 후리다(70) 여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공회대 재단의 요청으로 성공회대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이 무렵이었다. "시몬 주교님, 저 프란시스입니다. 성공회대 총장을 맡아주시지요."
김 회장이 김 총장을 시몬 주교님으로 부르는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은 1960년대 신부와 복사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복사란 신부가 미사를 드릴 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어린이를 말한다. 김 회장의 부친 현암(玄岩) 김종희(1923∼81) 한국화약 창업주는 아들 승연의 손을 잡고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찾곤 했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불리며 한국화약의 사세를 한창 키워가던 현암은 활기 넘치고 사교적이었지만 성당에서는 말이 없었고 구원을 갈구했다. 현암은 아들 승연이가 태어난 지 100일째에 세례를 받게 했다. 시몬 신부(김성수 총장)는 복사 김승연이 촛대를 들고 성경을 낭독하거나 성가를 선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현암 일가는 3대째 독실한 성공회 신자 가족이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김 총장은 김 회장의 제의를 받고 한동안 망설였다고 한다. "내 자신이 성공회대 졸업생이어서 성공회대에 애정을 갖고 있지만 대학간 치열한 경쟁시대를 맞은 터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성공회대가 자리한 서울 항동 부지가 크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죠." 성공회대 부지는 원래 유일한(1895∼1971) 유한양행 창업주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 성공회측에 4만평을 살 것을 제의했으나 성공회측은 1만3,000평만 사고 남는 돈을 봉사기금에 사용했다. '규모의 경쟁'에 접어든 시대에 부지를 넓힐 수 없다는 것은 흠이었다. 이 때 김 회장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작으니까 오히려 큰 대학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은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성공회대를 작지만 우수한 대학으로 키우자는 언약이다. 지난 12일 성공회대 교내 채플실에서 학생들이 김 총장의 생일파티를 마련했다. 학생들이 "할아버지 총장님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전했고 김 총장은 참석 학생 대부분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총장이 학생들로부터 생일축하 파티를 받는 것은 분규에 휩싸인 대학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 덕분에 성공회대는 한화건설에 맡긴 교내 새천년관 건립공사 대금 140억원 중 10억원을 탕감 받을 수 있었다. 김 총장 역시 취임이후 연간 2,000만원의 판공비 전액을 학교 운영비로 반납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공회대 복지학과는 지난해 교육부 선정 학과순위 1위를 차지했고 사회복지사 시험을 치른 학생 전원이 합격했다.
김 회장은 26년 건립된 이래 재정이 어려워 미완공 상태였던 정동 대성당에 거액을 쾌척해 90년대 초반 대성당 완공에 기여하기도 했다. 김 회장의 모친 강태영(76) 여사도 정동 대성당 신자로 수녀원에 도움을 주고 있다. 김 총장은 "고교 시절 폐병을 앓고 죽음의 문턱에 갔을 때 만약 건강이 다시 허락된다면 이웃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면서 "40여년 전에 맺어진 프란시스와의 인연이 신부인 나로 하여금 교육자의 길을 걷게 했고, 이후에도 계속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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