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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가요무대' 제작진이라면

입력
200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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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진행자 '고별무대' 배려“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멀리 계시는 해외 동포, 해외 근로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18년을 한결같이 해외 동포들의 안부까지 알뜰하게 챙겨가며 ‘가요무대’(KBS1 월 밤 10시)의 막을 올리던 김동건(65) 아나운서의 정겨운 목소리를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KBS는 23일 프로그램 개편에 즈음해 ‘가요무대’의 내용을 개편하고 진행자도 바꾸기로 했다. 이문태 예능국장은 “ ‘가요무대’는 국어로 치자면고전 공부만 해온 셈이다. 조용필 팬이 할머니가 돼있는 마당에 선곡을 일제시대나 60년대 이전에 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흘러간 옛 노래만 들려줘 ‘장수만세’가 되어버린 ‘가요무대’를 40ㆍ50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쇄신하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고정된 진행자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연주 사장은 이를 “가능하면 새 술은새 부대에 담자는 것”이라고 압축해 설명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인터넷 게시판이 시끄럽다. 항의 대열에는 그 시절,그 노래를 그리워하는 어르신들만 있는 게 아니다. “잘 하는 사람을 왜바꾸나. 30대도 잘 보고 있구만 무슨 소리 하는 건지….”(dfywe2352) “‘가요무대’를 볼, 애들 프로를 깔깔거리며 즐길 나이도 아닌 애 엄마지만 부모님과 이 프로를 보며 그 시절 애환을 듣곤 했다. 노인은 TV 볼 권리도 없나.”(mazuri69) “부모님과 대화가 부족해 ‘세대차이’를 느끼기도 하는 평범한 사춘기 소녀예요. 가요무대를 보며 부모님의 젊은 날을 함께 추억하곤 했고, 김동건 아저씨도 정말 좋아했는데 너무 슬퍼요.”(onlyuna) “영국에서 유학중인 학생입니다. ‘가요무대’와 함께 울고 웃으시던 부모님께서 세월의 유수 같음을 새삼 느끼고 기운을 잃지 않으실까 염려됩니다.”(iamsiren)시청자층을 넓히고픈 제작진의 욕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진행자를바꾸고 내용을 다듬어 다양한 연령층에게 두루 사랑 받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방법이 틀렸다. 시청자에게 이해를구하기는커녕 김동건씨 본인에게조차 마지막 무대가 된 16일 방송 분 녹화를 마친 9일에야 ‘하차’ 통보를 한 것은 거의 횡포에 가깝다.

내가 만약 ‘가요무대’ 제작진이라면, 바꿀 때 바꾸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겠다. 18년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가요무대’를 장수 프로로키워낸 진행자에게는 물론, 노래에 실린 그의 구수한 입담에 울고 웃던 시청자들에게도. 이제라도 김동건씨가 정든 시청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아름답게 퇴장할 수 있도록 ‘고별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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