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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車族 / "애인보다 더, Car∼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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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車族 / "애인보다 더, Car∼ 좋다"

입력
2003.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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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가 번쩍이고 피스톤이 펌프질하는 꿈의 기계/ 핸들을 잡으면 기어 소리뿐, 기름을 넣을 때 난 마치 병에 걸린 것 같아/ 난 내 차와 사랑에 빠졌지 옷깃을 단단히 세우고 바퀴가 '끼익'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을 때 전율을 느껴/ 여자친구한테는 헤어져야 한다고 말했어…/차는 말대꾸도 하지 않는데 네 바퀴의 내 친구…/ 난 내 차와 사랑에 빠졌지'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퀸의 노래 '난 내 차와 사랑에 빠졌다(I'm in Love with My Car)'의 가사는 자동차에게 보내는 절절한 연애편지다. 자동차수가 1,000만대를 훌쩍 넘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자동차와 열애중인 '애차족'들이 늘고 있다.

애인보다 차가 좋아!

회사원 신용식(33)씨는 부인도 애인도 없지만 외롭지 않다. 그에게는 여자친구보다 더 아끼는 자동차가 있기 때문이다. 신씨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 셀프 세차장에 가서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차를 청소한다.

3분이면 끝나는 자동 세차장은 차 표면에 흠집을 낼 수 있어 절대 가지 않는다. 대신 걸레를 손수 빨아서 짠 후 차 표면을 구석구석 정성 들여 닦아내고 가장 좋은 왁스를 곱게 발라준다. 바퀴에 낀 흙먼지 하나도 없애고 얼룩지지 않게 유리까지 윤을 내면 세차 끝.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바로 옆에서 신씨와 함께 공들여 세차한 후배가 자기 차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한마디 건넨다.

"형! 우와… 기분 너무 좋지 않아? 난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더라."

"하하… 나도 그렇다. 정말이지 너무 좋아…"

많은 노력과 시간을 세차에 투자하지만 차를 닦는 일은 신씨의 '애차생활'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삶에서 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물으니 '100%'라는 대답이 즉시 돌아온다.

"자동차는 일괄적으로 대량 생산되는 기계입니다. 개인의 취향과 욕구에 완벽히 부합할 리가 없죠. 차를 모는 동안은 끊임없이 저에게 맞게 차를 가꿔 나갈 겁니다. 애인은 배신해도 차는 배신하지 않아요. 투자한 만큼 저에게 안전과 기쁨을 주거든요."

신씨는 티뷰론과 투스카니를 모는 사람들의 모임인 TOG(Tuscani&Tiburon Owner Group) 회원이다. 현대자동차에서 후원하는 이 동호회 정회원 수는 약 250명. 대부분 신씨만큼 차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이를 가꾸고 개발하는 데 차를 살 때보다 더 많은 공과 돈을 들인다.

'폭주족'은 TOG 회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진정 차를 사랑하고 아낀다면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회원의 차마다 고유번호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 만약 공로(모두 함께 사용하는 차로)에서 난폭한 운전을 하거나 지나치게 속도를 냈다고 신고가 들어오면 동호회 제적사유가 된다. 불법으로 차를 변형한 사람이나 브레이크 등을 검게 칠하고 네온 등을 단 소위 '양카'('양아치 차'라는 뜻으로 남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로 차량 외부를치장한 차량을 뜻하는 속어) 주인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피해주는 '폭주족'은 NO!

"CQ CQ TOG 카피!" "CQ CQ TOG. 여기는 TGO 본대입니다. 수신되는 국장님 어떤 분이세요? 오버" "저는 당국 '이루'입니다. 오버." "지금 본대 판교톨게이트 지나가니깐 '오리온' 국장이 비상등 켜고 차량 진입 공간 만들어주시면 들어오십시오. 오버."

서울 잠원동 한강 둔치에서 모인 TOG 회원들의 그룹 드라이빙 현장. 똑 같은 차종 40여대가 경부 고속도로를 일렬로 주행한다. '그룹 드라이빙'은 동호회 회원 등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목적지까지 함께 운전해가는 것을 뜻한다. TOG 김진성(33) 홍보부장은 "차로를 모조리 막아버리는 잘못된 그룹 드라이빙 때문에 제대로 하려는 사람들까지 욕먹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은 물론 남의 안전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모터스포츠'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차로 출퇴근하는 한두시간은 하루 동안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완벽히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있는 '정모(정기모임)'에서는 그룹 드라이빙과 함께 자동차 정비행사를 갖는다. 정비소를 빌린 후 리프트로 차를 들어 올려 서로의 튜닝 상태를 점검하고 회원들 간에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종종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같이 '법적으로 빨리 달릴 수 있는 곳'에 가서 차의 성능을 시험해볼 때면 희열을 느낀다. 다른 차보다 느리거나 유연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한다.

젊은이들, 특히 남자들이 자동차 문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TOG 허장혁(35) 회장은 "남자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사치품이 자동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치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돈을 많이 들였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자기만족을 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 허 회장 역시 부인도 애인도 없다. 차를 보며 "저 놈 때문에 결혼도 못했다"고 웃으면서도 "팔고 나서 남이 몰고 가는 차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우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내 차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애인'이라 하겠다"고 할 정도로 부인 할 수 없는 지독한 자동차 마니아다.

한국자동차튜닝협회 신정수 회장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마니아가 늘고 있지만 일본이나 유럽 등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라며"현재 차량을 개조하거나 모터스포츠를 즐기려면 많은 규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적절히 개발하면 자동차 생산에 버금가는 국가적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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