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TV의 황금시간대는 저녁 8시부터다. 한국의 '9시 뉴스'에 해당하는 종합뉴스도 '8시'라는 이름으로 방송된다. 이 '금쪽 같은' 시간대의 시청자 공략은 저녁 7시부터 시작된다. 공영 채널 'France 2'는 오랫동안 7시에 편성할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어 고심했다. 상금이 푸짐한 게임 프로그램을 내보내거나, 퀴즈 프로그램을 기획해 인기 사회자를 파격적 대우로 영입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기대에 못 미쳤다.'마의 시간대'라고 불린 공영 방송의 7시를 살려낸 보물단지는 '우리가 다 시험해 봤습니다!'라는 가족용 토크쇼다. 2001년 9월 신설된 이 프로는 세월이 흐를수록 인기를 더해 평균 300만명이 넘는 시청자, 19∼20%의 시청점유율을 기록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프로는 화제가 되는 모든 것을 소재로 삼는다. 새 음반, 개봉 영화, 국회에 상정된 법안, 반전 시위, 학력고사 등 각 분야의 쟁점이 고루 등장한다. 초대 손님도 각양각색이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부인이자 세계적 모델인 아드리아나 캬랑브,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 테니스 선수 앙드레 아가시 등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각기 생업에 종사하는 스무 명의 유명인들이 매회 6명씩 번갈아 패널로 출연, 개그맨 로랑 뤼키에의 재치 넘치는 진행에 한 마디씩 의견을 보태며 분위기를 살린다. 진행자가 "새해 보졸레 포도주를 우리가 시음해 봤습니다"라고 운을 떼고 소감을 물으면 "아주 근사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비싸서야 어디 자주 마실 수가 있나요?", "내가 뭘 아나요? 보르도나 보졸레나 그게 그거더구만요" 등의 솔직하고 다양한 대답이 튀어나온다.
신세대 댄스 가수 빌리 크로포드가 나왔을 때 70대 할머니 문필가 클로드 샤롯은 "참 잘 생겼다"며 여전히 고운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다. 그런가 하면 장 폴 고티에의 모델로 유명한 20세 청년 스티비가 노장 가수 앙리코 마시아스를 앞에 두고 "나는 테크노만 들어서 이런 음악은 이해가 안된다"고 하자, 50대 정신분석가 제라르 밀러는 특유의 짱짱한 목소리로 대뜸 "한 장르를 좋아한다고 다른 장르를 배척하는 것은 편협한 자세"라고 꾸짖는다.
'우리가…'는 정곡을 찌르는 유머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소학교' 같은 고어를 써서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바캉스 때는 삶은 달걀이 든 바나나 백을 허리에 두르고 대서양에서 종일 헤엄을 친다는 할머니,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엄격한 아버지, 주책바가지 엄마, 장난꾸러기 삼촌, 귀여운 여성운동가 이모, 주관이 뚜렷한 신세대가 모여 앉는 이 프로에서는 오늘의 프랑스를 명쾌하고 유쾌하게 풀이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녀노소를 불문한 폭 넓은 시청자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이들 사이에 대화 통로를 마련하는 데도 성공했다.
/오소영·프랑스 그르노블3대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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