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라는 주요 작가들의 자전소설집이 있다. 그 중 아버지에 관한 부분이다. <어두운 포대 벙커 속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받았다. 순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벙커를 나와 어두운 산비탈에 서서 모자를 벗고 한없이 눈을 맞았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추억의 전부였다.…> 프로이트 식 정신분석학을 흉내내자면, 성장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잘 해결한 경우일 것 같다. 인용하기조차 거북하지만, 반대의 고백도 실려 있다.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가 죽지 않으면 내가 그에게 살해당하거나, 아니면 그를 독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 미국에서 '어머니 날'은 5월 둘째 일요일이고, '아버지 날'은 6월 셋째 일요일인 어제다. 우리에게도 한 때 '어머니 날'이 있었다. 지금은 5월 8일을 '어버이 날'로 지켜오고 있다. '아버지 날'은 존재한 적이 없지만, 우리 사회의 부성애는 애틋하다. 자식 출세를 위해 유학 보내고 부인까지 딸려 보낸 '기러기 아빠'가 늘고 있다. 정치인도 지극하다. 전직 대통령들은 아들로 인해 국정을 망쳤으면서도 부자의 정은 돈독하기만 하다. 아들 병역문제로 좌절한 유력한 대통령 후보 집의 부자유친에도 이상은 없다. 헌신적 부성애로 보면 지금쯤 독립된 '아버지 날'이 제정됐음직도 하다. 하루라도> 어두운>
■ 미국 원로배우 커크 더글러스의 금연기는 아버지의 줄담배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의사의 경고를 받고 담배를 끊었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넣고 다니다가 담배 생각이 나면, 그것을 꺼내 노려보며 말했다. "누가 더 세냐? 너냐, 나냐?" 그러나 결국 너무 늦어 암으로 사망했다. 커크는 감독의 연기지도로 인해 늦게 담배를 배웠다. 금세 하루 두세 갑을 피우는 골초가 되었다. 하루는 담배를 피우다가 선친의 사진을 보고 처참했던 마지막 병상을 떠올렸다.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선친을 흉내냈다. "누가 더 세냐? 너냐, 나냐?" 그도 금연에 성공했다.
■ 부자유친에서도 미국은 한 수 위인가. 최근 한미 양국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의 방북이 제안되고 있다. 그렇게라도 해결만 된다면 다행이겠으나, 정치권이 6·15 남북공동선언 3주년의 의미를 한참 퇴색시킨 가운데 나온 이 발상이 씁쓸하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민주주의적 양식과 가치를 교육하지 않는 한, 건강한 부자 관계도 자라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부권 상실의 시대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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