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다이어―위데포드 지음·신승철,이현 옮김·이후 발행·1만9,000원컴퓨터와 인터넷을 주축으로 한 정보기술 혁명 시대, 공산권의 도미노 붕괴 이후 세계의 앞날을 예측하는 일은 훨씬 수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체제에 끊임 없이 제동을 걸던 사회주의 이념이 일단 '실현 불가능'이라 판명났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자본의 세계화·보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이나, 앨빈 토플러, 대니얼 벨 류의 미래학을 의심한다. 아니 미래가 그렇게 수동적으로만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정보·미디어학과 교수인 저자도 바로 이런 일군의 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 책에서 정보시대가 자본과 노동주체 간의 역사적 대립을 해소하기는커녕 어떻게 그 대립을 거대한 전장으로 바꾸었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일반적 상품화라는 전례없는 세계 질서를 만들어낸 첨단 기술이 역설적이게도 어떻게 부가 공동 분배되는 미래를 실현하려는 세력들의 등장을 부추기는지를 해명해내고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의 폭넓은 해석을 통해 공간이나 상황에 제약받지 않는 다양한 실천 이론을 이끌어내는 이른바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노선에 서 있다. 그는 마르크스가 생산·유통과정으로만 설명한 자본 순환의 계기를 생산과정, 노동력의 재생산 과정, 자연의 재생산 과정, 이 세 계기의 순환 등 4가지로 확장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술의 힘을 빌어 더욱 공고한 세력을 구축하는 자본의 힘에 맞서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대립과 투쟁의 전선이 형성된다. 정보기술 혁명 시대에 이런 저항의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첨단기술을 다양하게 이용하는 '다중'(multitude·또는 '일반지성'으로도 부른다)이다. 결국 저자는 '볼셰비즘의 해체는 마르크스주의의 종말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의 계보에서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던 지류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꽃피울 수 있는 공간을 열어놓는 사건'으로 본다.
총체적 상품화라는 맥락에서 컴퓨터, 원격통신, 그리고 유전공학의 등장은 기술에 의한 대량실업의 위기, 기업의 문화 독점, 지식의 사유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궁극으로는 인류를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적합한 인간형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마르크스주의가 이런 운동과 충돌하는 힘인 한, 마르크스의 저술은 이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저자는 믿는다.
1999년 출간된 원저를 번역하는 작업은 '다중문화공간 왑'(지금은 자율평론 사이트 'jayul.net'에 통합됐다)이라는 인터넷 토론 및 지식 공유 모임의 강독을 통해 이루어졌다. 역자를 포함한 강독자들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고민했다. 그들의 말대로 "사이버스페이스가 자유의 새 공간이 되느냐, 아니면 디지털 자본주의의 식민 공간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다중의 손에 달려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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