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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일그러진 독일 자화상-게나치오 '여자,둥지,소설'/새로운 폭력 21세기 테러-라크보이어 '서방에 대한 전쟁'

입력
2003.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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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빌헬름 게나치오(60)는 지독하게 조용하고 시적인 남자다. 난 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토마스 만의 아름다운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 5장 마지막 절 분석에 무려 세 시간을 바쳤었다. 게나치오의 언어는 문장이든 대화이든 느린 라르고와 증류된 피아니시모 속에서 진행된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가 자신이 다루는 언어들을 분말저울에 달아 정량만 출고해 사용한다는 느낌이 든다. 언어를 극약 다루듯 하는 그의 조심성 때문에 그의 실험실에서 생산된 언어들은 공기보다 가볍고 투명하다. 그것이 독자들이 그의 작품에 신뢰를 보내는 이유이다.그가 전후 1960년대 젊은 독일공화국에서 성인되어감의 의미를 기록한, 그답지 않은 파격적 제목의 성장소설 '여자, 둥지, 소설'을 출간해 화제다. 160쪽의 이 신작소설에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소설가를 꿈꾸는 17세 남자 바이칸트가 등장한다. 낮에는 판매견습사원으로, 밤과 주말엔 지방신문에 기고할 글쓰기로 보내는 그에겐 비서 출신의 3년 연상 애인이 있다.

그들은 일남일녀를 낳겠다는 구체적 미래 설계에도 불구하고 만삭인 배를 안고 부랴부랴 치러내야 하는 지각 혼례에 대한 끔찍한 공포 때문에 뜨거운 키스 외엔 나누지도 못하고 있다. 패전의 악몽이란 터널로부터 벗어났다는 정신적 안도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전쟁이 남긴 악몽과 카오스의 도장을 이마에 찍힌 채 살아가는 고독하고 수척하고 주름투성이인 잿빛 초상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또 우울한 목제의자에 앉아 두 손 안에 악력을 다해 부여잡고 있는 기차표 한 장을 응시하고 있는 인간들이다. 그 기차표 한 장이 계시했던 종착역, 그것이 결국 바로 오늘의 독일공화국인가, 게나치오는 이 소설에서 묻고 있다. 그 대답은 지난 주 독일 사민당 창당 기념일에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가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에 기고한 분석이 적절하다. 슈미트에 의하면 독일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임금, 가장 긴 유급휴가, 불평의 천재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해 있다.

고령의 테러리즘 연구가 월터 라크보이어의 신간 '서방에 대한 전쟁―21세기의 테러리즘'도 주목된다. 그는 이 저서에서 테러의 세 가지 단계를 제시한다.

만인에 대한 테러리즘, 종교적 정치적 광신으로서의 테러리즘, 대량학살무기 시대의 테러리즘이 그것이다. 21세기는 더 이상 가난, 기아, 실직, 희망의 절명에 대한 비명으로서의 테러 시대가 아니다. 국가폭력과 테러조직의 폭력, 폭력과 반폭력 진영이 서로 격렬하게 부딪치면서 새 차원의 생물학적, 유전학적 폭력이 도래하고 있다. 테러를 통해 인간은 타인을 훨씬 더 빨리, 더 대량으로 학살할 수 있는 시대를, 그리고 자신도 훨씬 더 빨리 더 참혹하게 삶에서 퇴장할 악몽을 준비해 놓고 있다.

강 유 일 독일 라이프치히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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