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정상이 분단 후 처음으로 만나 서명한 '6·15 남북 공동선언'이 3주년을 맞는다. 초기의 놀라움과 감격은 가시고, 합의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냉정하게 되새기게 하는 시점이다.6·15 선언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합의가 미진하다는 점을 줄곧 지적받았다. 이제는 대북송금에 대한 수사가 진행돼 돈으로 산 문서라는 비난마저 나온다. 서명 당사자인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 모두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핵 문제로 남북관계에 냉기가 돌면서 '당사자끼리의 화해 약속'이라는 가장 큰 가치마저 퇴색하고 있다.
그러나 합의가 부족하면 할수록, 위기가 고조되면 될수록 6·15 선언의 소중함도 더하고 있다. 5개항의 선언문은 여전히 남북한이 함께 지키고 있는 최고의 규범이기 때문이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6·15 선언은 남북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6·15 선언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대립·갈등에서 화해·협력으로 변화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해교전, 북핵 파문 등의 위기 속에서도 10차례의 장관급회담을 비롯해 총 77차례의 당국간 회담과 6차례의 이산가족 상봉 등 대화와 교류가 지속된 것은 남북의 화해협력이 되돌릴 수 없는 큰 흐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3년간은 경제협력과 사회·문화·체육 등 제반 분야의 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한 시기다. 경제분야 회담은 금강산 관광,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 전력·해운 협력 등으로 확대됐고 경협·교역 활성화로 이어졌다. 2000년 4억달러였던 교역규모가 지난해에는 6억4,000만달러를 넘어섰고 총 432개 업체가 568개 품목을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14일에 열린 경의·동해선 철도 연결식은 민족의 혈맥을 잇고 시베리아횡단철도(TSR)·중국횡단철도(TCR)와의 연계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과 한반도가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6,200여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고 금강산 관광객은 32만여명에 달한다. 문화·체육·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교류가 이어졌고 사업·학술·대북 지원 등을 위해 남북을 오간 인원도 2000년을 전후해 10배 이상 늘었다.
북한도 6·15 선언이 자주적 통일 원칙과 남북간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명시한 점을 들어 '통일의 이정표'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최근 들어 참여정부의 핵·경협 연계 방침을 비난하면서도 경협 지속 의지를 밝히는 등 실용주의적 대남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간에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정치·군사분야의 남북 당국간 신뢰구축이 시급하다. 2000년 9월 국방장관회담에 이어 군사직통전화 설치 등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지난해 서해교전에서 보듯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 상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6·15 공동선언은 특히 북핵 문제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참여정부에게는 한미동맹·남북공조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 북한에게는 핵 파문의 당사자로서 전향적인 자세 변화가 시급한 이유다. 일각에서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2차 정상회담의 조기 추진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검수사 결과 대북송금의 정상회담 대가성이 인정되고 사법처리로 이어질 경우 남남갈등과 남북관계 경색이 불가피하다. 결국은 6·15 선언에 담긴 합의가 백지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통일연구원 전현준(全賢俊) 연구위원은 "향후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장 큰 요인은 북핵 문제 해법과 특검수사 결과"라며 "특히 핵 문제에 있어서는 정부가 경협 중심의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통해 북한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고주희 기자 torch@hk.co.kr
가격·임금 인상, 부분적 성과급… 北경제 변화 두드려져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간 교류·협력이 급증하면서 북한 사회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특히 지난 해 7월1일 발표된 '경제관리개선조치'와 신의주특구·개성공단 건설, 복권식 인민생활공채 발행 등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중국식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경제개선조치는 물가인상을 통한 가격·임금 현실화와 부분적 성과급제 도입, 배급제 부분 폐지 및 농민시장 양성화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1년간 물가 조정과 가격 변동 등을 통해 수요·공급간 격차를 줄여가면서 생산 증대와 국가재정 개선 등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이 2001년에 비해 1.2% 성장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공급 부족과 핵 문제로 인한 대외경제 여건 악화 때문에 가격 현실화 정책이 물가 폭등으로 이어지면서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인해 올해도 143만톤 가량의 쌀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지난해 11월 이후 중유 공급이 중단되면서 전력난이 가중되고 산업가동률도 지난 해 28%에서 26%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중국과의 마찰로 인해 신의주특구 개발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북한이 지난 5월부터 재원 조달과 통화량 조절을 목적으로 복권식 인민생활공채를 판매하기 시작한 점, 남북관계에서 정·경 분리 원칙을 천명한 점 등은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지난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경제개혁'과 종합시장 설치 등을 언급하면서 외부 지원이 절실함을 실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연철(金鍊鐵) 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은 핵 문제의 와중에서도 거시경제 차원의 내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북한의 시장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경제인력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가격·임금 인상, 부분적 성과급… 北경제 변화 두드려져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간 교류·협력이 급증하면서 북한 사회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특히 지난 해 7월1일 발표된 '경제관리개선조치'와 신의주특구·개성공단 건설, 복권식 인민생활공채 발행 등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중국식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경제개선조치는 물가인상을 통한 가격·임금 현실화와 부분적 성과급제 도입, 배급제 부분 폐지 및 농민시장 양성화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1년간 물가 조정과 가격 변동 등을 통해 수요·공급간 격차를 줄여가면서 생산 증대와 국가재정 개선 등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이 2001년에 비해 1.2% 성장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공급 부족과 핵 문제로 인한 대외경제 여건 악화 때문에 가격 현실화 정책이 물가 폭등으로 이어지면서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인해 올해도 143만톤 가량의 쌀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지난해 11월 이후 중유 공급이 중단되면서 전력난이 가중되고 산업가동률도 지난 해 28%에서 26%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중국과의 마찰로 인해 신의주특구 개발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북한이 지난 5월부터 재원 조달과 통화량 조절을 목적으로 복권식 인민생활공채를 판매하기 시작한 점, 남북관계에서 정·경 분리 원칙을 천명한 점 등은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지난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경제개혁'과 종합시장 설치 등을 언급하면서 외부 지원이 절실함을 실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연철(金鍊鐵) 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은 핵 문제의 와중에서도 거시경제 차원의 내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북한의 시장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경제인력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가격·임금 인상, 부분적 성과급… 北경제 변화 두드려져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간 교류·협력이 급증하면서 북한 사회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특히 지난 해 7월1일 발표된 '경제관리개선조치'와 신의주특구·개성공단 건설, 복권식 인민생활공채 발행 등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중국식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경제개선조치는 물가인상을 통한 가격·임금 현실화와 부분적 성과급제 도입, 배급제 부분 폐지 및 농민시장 양성화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1년간 물가 조정과 가격 변동 등을 통해 수요·공급간 격차를 줄여가면서 생산 증대와 국가재정 개선 등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이 2001년에 비해 1.2% 성장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공급 부족과 핵 문제로 인한 대외경제 여건 악화 때문에 가격 현실화 정책이 물가 폭등으로 이어지면서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인해 올해도 143만톤 가량의 쌀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지난해 11월 이후 중유 공급이 중단되면서 전력난이 가중되고 산업가동률도 지난 해 28%에서 26%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중국과의 마찰로 인해 신의주특구 개발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북한이 지난 5월부터 재원 조달과 통화량 조절을 목적으로 복권식 인민생활공채를 판매하기 시작한 점, 남북관계에서 정·경 분리 원칙을 천명한 점 등은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지난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경제개혁'과 종합시장 설치 등을 언급하면서 외부 지원이 절실함을 실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연철(金鍊鐵) 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은 핵 문제의 와중에서도 거시경제 차원의 내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북한의 시장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경제인력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양정대 기자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시급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은 같은 해 8월15일 1차 이산가족상봉을 통해 피와 눈물로 육화(肉化) 됐다. 이달 말 예정된 7차 상봉까지 남북의 혈육 6,210명이 눈물어린 재회의 기쁨을 누리고, 1만 5,430명이 생사를 확인하게 된다.
만남의 방식도 그 동안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당초 남북 각각 100명의 이산가족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하는 방식에서 지난해 금강산 상봉으로 바뀌었고, 올해는 드디어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육로 상봉길이 뚫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123만명에 달하는 이산 1세대에게 상봉은 아직까지 남의 집 잔치나 다름없다. 대한적십자사에 가족 상봉을 신청한 남측 이산가족만 3년간 남측 가족 상봉자의 30배를 넘는 10만3,694명. 이중 기다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70대 이상 고령자는 6만7,200명이다. 이산가족상봉의 제도화·정례화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남북은 이를 위한 상설 면회소 설치, 생사·주소 확인, 서신 교환 등에 대해서는 3년 동안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통일부는 최근 더 많은 상봉 기회를 주기 위해 북측에 상봉단 규모를 탄력적으로 조정하자고 제의했지만 이 역시 벽에 부딪쳐 있다.
대한적십자사 민병대(閔丙大) 남북교류국장은 "멀리는 1970년대부터 논의한 내용이지만 백 문제 중 한 문제나 풀었다고 할 정도"라며 "남북 관계는 문자 그대로 쌍방 관계여서 어느 한 쪽의 결단이 없으면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남북이 '전쟁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로 표현하는 한국전쟁 납북자(8만4,500명), 국군포로(496명), 그리고 휴전 이후 납북자 486명의 가족상봉이나 생사확인 문제는 아직까지 제대로 논의도 안 되는 실정이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