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은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이 꽃다운 나이로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월드컵의 열기에 묻혀 일부 인권·시민단체에서만 관심을 갖던 두 여중생의 죽음은 지난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불평등한 한미관계 재정립을 위한 '상징적 동인(動因)'으로 승화했다. 인터넷 등을 통한 자발적인 참여가 돋보인 여중생 추모 촛불 시위는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정치, 사회적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미국에 대한 침묵을 깨다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여중생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의 금기(禁忌) 하나가 깨졌다고 평가한다. 그는 "그동안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모두 침묵하던 관행이 여중생들의 죽음과 이어진 추모 시위로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장 장주영 변호사는 "미국을 '맹방'으로 대하는 일방적인 평가 대신 미국과 미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한국사회에 내재돼 있던 반미(反美) 정서가 확산되면서 미국 역시 한국을 달리 대하기 시작했다. 중앙대 국제대학원 김태형 교수는 "비록 미국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지만 대미 종속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한국민을 이제 미국이 함부로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발적인 참여 문화 확산 월드컵 거리 응원으로 촉발된 광장문화는 '자발적인 참여'를 당연하게 여기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렸다. 이들은 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이용해 여중생 사망 사건의 억울함을 온 사회로 확산시켰다. 한양대생 신동근(26·영문4)씨는 "인터넷 메신저에 여중생을 추모하는 검은 리본 달기, 네티즌의 추모 촛불 시위 제안과 자발적인 참여 등 다양한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월드컵 세대로 지칭되는 젊은 세대는 반미시위를 폭력적, 정치적 이슈 중심이 아닌 다양한 아이디어와 문화적 상징이 빛나는 비폭력적인 시위로 정착시켰다"고 분석했다.
미완의 현안 참여연대 이태호 실장은 "1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요구들이 한미관계의 정상화에 충분히 수용되거나 반영되지는 않았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당당한 외교와 자주국방을 외쳤던 참여정부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조차 원활히 해결하지 못하고 미국에 끌려가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친미·반미를 둘러싼 사회의 이념 논쟁도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 장주영 변호사는 "이제는 미국이 한국의 국익에 반하는 정책을 집행하면 비판하는 것이 바로 반미가 되기 때문에 친미·반미의 이분법적 구분은 옳지 않다"며 "국민들의 높아진 자존 의식을 정치권이 받아들여서 제도화하고 구체적인 성과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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