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년 한산도에서 일본 수군은 이순신 함대에 대패한다.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뒤 메이지 시대 새롭게 창설된 일본 해군은 한산대첩이 열린 한산도를 매년 찾아 이순신 장군에게 진혼제를 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왜 그들은 적국의 장수에게 고개를 숙였던 것일까.편성 개편으로 폐지가 확정된 KBS 1TV '역사스페셜'이 마지막 방송으로 성웅 이순신 장군을 새롭게 조명하는 특별기획 '이순신'(연출 강희중·사진)을 14일과 21일 오후 8시 2부작으로 방송한다.
1편 '불패의 장군, 신화가 되다' 는 당시 한산대첩에서 대패한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등 일본 장수들의 후손들 인터뷰와 일본의 이순신 병법 연구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일본이 바라보는 적장 이순신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보여준다.
1편은 와키자카가 한산도 제승당을 찾아 이순신 장군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 심복 중 한 명인 와키자카는 임진왜란 초기 경기 용인에서 단 2,000명의 군사로 10만 조선군을 물리치는 놀라운 전과를 세운 명장이지만, 이순신의 병법 앞에 무릎을 꿇었다. 훗날 일본의 '근세일본국민사'는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군은 반신불수가 되었고, 조선 정벌은 사망 선고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와키자카 가문에서 내려오는 전쟁기인 '와키자카기(脇坂記)'에서 '초승달 모양으로 둘러쌌다'고 기록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을 오늘날 일본 해군이 배워갔다는 분석이다. 학익진과 유사한 T자 전법으로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은 스스로를 이순신의 제자라고 부르고, 일본 해군 창설 이후 '이순신 병법'이 활발하게 연구되어 왔다고 제작진은 전한다. 이순신 장군의 '장계'와 '와키자카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실물 크기의 배를 만들고, 특수 촬영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한산대첩을 재연한 장면이 볼거리다.
2편 '영웅의 선택, 급류 앞에 서다'는 이순신의 시각에서 수군해체 위기, 명량대첩, 노량해전 등 위기의 순간순간 그가 어떤 선택과 고민을 했는지 짚어볼 예정이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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