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소환일정이 확정됐다. 이로써 송두환 특별검사팀의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수사도 등산으로 치면 9부 능선을 넘어서게 되는 셈이 됐다. 그러나 수사의 마지막 고비인 김대중 전 대통령 처리 문제를 놓고 특검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일단 특검팀의 대북송금 사건 수사는 실질적으로 박 전 실장의 소환 조사를 계기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전망이어서 사건성격 규정과 관련자 사법처리만 남겨 두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 전체 수사 과정을 통틀어 최대의 '난코스'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대북송금을 대통령의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바라볼 것인지, 그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할 수 있는 것인지, 사법처리를 할 것인지 여부 등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특검팀 관계자는 12일 "실정법을 위반한 통치행위의 면책 여부는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다는 것이 통치 행위론과 관련된 주류 학설의 핵심"이라고 말해 이번 사건을 통치행위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면책 여부는 사법부로 넘겨 판단을 구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발언은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법원의 책임인 이상 수사 주체인 특검은 가능한 사법적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고, 또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김 전 대통령의 기소 가능성은 물론 기소의 불가피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북송금을 통치행위로 규정한 마당에 통치권자였던 김 전 대통령을 비껴가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조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자제론'을 들어 이 같은 특검의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통치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그에 대한 사법 판단의 면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따라서 통치행위의 형사 책임 여부를 법원에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어폐라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기소가 몰고 올 사회적 파장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특검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 조사에 따른 정치적 파장이 얼마나 큰지 우리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느냐"며 전직 국가 수반의 사법처리에 따르는 부담감을 토로했다. 때마침 다가온 6.15 남북공동선언 3주년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은 12일 KBS와 가진 정상회담 3주년 기념 대담에서 "대북송금이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추호의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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