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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주의 만연 흉악범죄 예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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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주의 만연 흉악범죄 예사로

입력
2003.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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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납치강도 등의 반인륜적 흉악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인질강도는 단 한번의 범행으로 인생을 역전시켜보겠다는 심리에서 비롯된 한탕주의 범죄의 전형.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한탕주의 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아 흉악범죄의 기승이 우려되는 상황이다.6월 한달만 인질강도 5건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들어 발생한 주요 인질강도 사건은 모두 9건. 이 가운데 6월에만 5건이 발생,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위자료 마련이나 주택자금 마련 등 범행동기는 다양하지만 한건으로 일거에 거금을 거머쥐려는 한탕주의식 범행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10일 발생한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은 대표적인 한탕주의 범죄. 고등학교 동창생 사이인 범인 2명은 '한탕'을 모의하고 서울 압구정동과 연희동 일대에서 범행대상을 물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동기는 모두 경제적인 이유로 밝혀졌는데 범인들은 경찰에서 "이혼할 부인에게 지급할 위자료 1,500만원이 필요했다" "할부로 산 코란도 승용차 대금을 갚아야 했다"고 태연히 진술했다.

지방에서 납치한 여대생을 서울로 끌고와 감금하면서 1억원의 몸값을 요구한 부부인질강도단은 사업실패가 범행이유였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15년 형기를 마치고 최근 출소한 남편은 부인과 함께 다단계 판매업을 시작했지만 판매는 부진하고 카드대금만 쌓이자 범행을 계획했다.

3월 순천에서 발생한 고등학생 납치사건의 범인 김모(26)씨도 사업실패로 지게된 2,500만원의 카드빚을 갚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인질강도에는 전문범죄꾼 뿐아니라 카드빚 등에 시달리는 일반인도 가세하고 있다. 여대생 납치사건의 범인들은 평범한 20대였으며 이달초 인천에서 학원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유치원생을 납치한 범인도 이 학원의 강사였다.

경기침체가 한탕주의로 이어져

한탕주의 흉악범죄의 급증에는 경기침체라는 요인이 직접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기침체는 취업난과 사업실패 등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카드대출 등의 부채가 늘어나다 보면 일거에 부채를 해소하려는 심리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경찰대학교 김재민 교수는 "신용카드를 남용하다 카드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살인·납치 등의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명경시 풍조의 만연도 흉악범죄를 부추기는 요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물질 만능주의 풍조 및 극도의 이기주의 등이 경기침체와 맞물려 일련의 흉악 범죄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고립 상태에서 통제력을 상실하고 한탕주의로 흘러드는 범죄심리를 치유할 시스템의 마련을 촉구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김대성기자 tellme@hk.co.kr

■ 납치·유괴 대처 어떻게

10일 발생한 여대생 김모(21)씨 납치·피살 사건은 납치 인질극 수사에서 피해자 가족의 초동 대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다. 일선 수사관들은 "경찰에 납치 사실을 알리지 않고 피해자 가족이 직접 해결하려는 바람에 빚어진 비극"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일선 수사관들은 경찰 등의 조언 아래 납치범들과 끈질기게 협상하는 것이 납치사건 해결의 최우선 순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납치범들이 유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경찰 등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 구체적으로 피해자 가족들은 "왜 납치했냐" "경찰에 알리겠다" 는 등 납치범을 자극하는 말을 최대한 아껴야 하며, 피해자도 최대한 자제하면서 납치범을 안심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설령 범인이 요구하는 돈을 충분히 줄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 해도 순순히 협상에 응하지 말고, "현금으로 한꺼번에 준비하기 힘든 액수다"라며 시간을 끌면서 반대급부로 인질이 살아있는지를 증명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 통상 2인 이상인 범인 사이에서 인질을 석방할지, 살해할지 등에 대한 이견이 생기면 의외로 쉽게 범인들을 검거할 수도 있다고 수사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현금 1억원을 건네면서 딸의 생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소홀히 했다. 일선 수사관들은 피해자가 납치범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성인일 경우 납치범들은 돈을 받았다 해도 인질을 석방할 확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줬다고 말하고 있다. 강남경찰서 황운하 형사과장은 "인질범들에게 돈을 너무 쉽게 건네주면 범인들은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에 인질을 거추장스러워 하는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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