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확 뒤집어 졌으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당신인지도 모른다.'역전에 산다'의 주인공 강승완(김승우)이 딱 그런 존재다. 골프 신동이던 증권사 영업 사원 강승완(김승우)은 이혼한 여동생에게 얹혀 사는 것도 모자라 거듭되는 투자 실패로 거의 죽을 맛이다. 조폭 두목 마강성(이문식)의 투자금을 날리는 바람에 실컷 두들겨 맞은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터널 안에서 질주하다가 마주 달리는 차 안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보게 된다. 깜짝 놀라 터널에서 사고가 나고 마는데 깨어나 보니 딴 세상. 자신은 한국의 대표적 골프 천재가 돼 있고 으리으리한 집에 연애 스캔들까지. 하지만 즐겁지가 않다. 예쁜 아내(하지원)는 각방을 쓰며 이혼을 요구하고, 세계적 선수와의 엄청난 대결이 코 앞에 다가온 것이다.
잘 나가는 남자가 깨어나 보니 가난뱅이가 돼 있다는 설정의 할리우드 영화 '패밀리 맨'과 정반대의 경우로 달라진 상황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남자의 좌충우돌을 통해 웃음을 던져야 하는 것이 이런 코미디의 과제다.
장점부터 말하면 이렇다. 강승완의 운명을 바꾸어 주는 운명의 여신이 옷가게 주인이라거나 "너 강간으로 들어왔지. 너처럼 생긴 놈들이 평균적으로 아니, 강승완 선수 아니십니까"하며 폭소를 자아내는 임창정의 코믹한 카메오 연기, "골프 신동 강승완씨 맞으시죠. 방송국인데요"라고 전화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의외의 인물로 밝혀지는 마지막 대목 등은 귀여운 설정이다.
그러나 영화는 결정적으로 서로 다른 두 세계에서 살고 있는 인물의 내면의 차이를 유기적으로 표현해 내지 못함으로써 상황의 웃음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한다. "당신 왜 이렇게 변했어"라는 골퍼 강승완 아내의 대사에도 불구, 증권맨 강승완과 골퍼 강승완의 성격 차이와 그 이유가 확연히 설명되지 못하고, 증권맨이 골퍼로 인생을 바꾸어 사는 것도 그다지 흥미롭지 못하다. 증권맨 강승완의 부장이 다른 세상에선 택시기사가 되어 있다거나, 조폭 마강성이 의사로 변한 모습에서는 어떤 개연성도, 상황의 기막힌 반전도 보이지 않는다.
'라이터를 켜라'에서 차승원과 막상막하의 연기 대결을 벌였덤 김승우의 단독 주연 연기는 아슬아슬해 보인다. 혼자 영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연기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속 시원히 '김승우 영화'라고 평가할 만한 인상적 대사나 표정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원의 캐릭터나 연기는 지나치게 멜로적이며, 남편을 기다리며 혼자 그네를 타는 장면은 70년대 청량음료 광고에 어울릴 것 같다. 무엇보다 시간과 인생의 역전을 주제로 한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서는 논리 구성이 치밀한 시나리오가 관건이라는 사실을 일깨운 작품이다. 감독·각본 박용운. 13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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