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순천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서 겪은 일이다. 100리쯤 되는 이 구간은 시원하게 뚫려 기사들이 과속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사들은 시간을 아끼려고 100리 길을 30분도 못돼 도착한다. 내가 탄 택시의 기사도 혈기왕성해 보이는 30대 남자였다. 내심 불안했다. "젊은이, 급하더라도 조금 천천히 갑시다."그러자 기사는 "걱정 마세요, 과속으로 달리면 기름도 훨씬 많이 먹어요" 하는 것이었다. 기사의 태도가 어쩐지 믿음직스러워 안심이 되었다. 순천까지 편안하게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안전운전에다 절약이 몸에 밴 재미있는 사연까지 알게 됐다.
그는 아내와 결혼하기까지 선을 아홉번이나 봤다. 눈이 높아서인지 기대는 번번히 깨지고 마음에 드는 상대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아홉번째로 선을 본 여자는 특별히 마음에 끌리지도,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오동도를 산책하고 횟집에 들러 장어회 5인분을 시켰다.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이 팔려 헤어질 때가 돼서 보니 회를 1인분도 채 먹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던 아가씨가 "남은 회를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동생이 회를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그간 선을 여덟번이나 봤지만 먹지 못한 음식이 아깝다는 기색을 한 아가씨는 한 명도 없었던 터였다. 그는 "선을 보는 마당에 궁색하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며 짐짓 화를 내는 척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정성스레 남은 음식을 싸는 것이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이 여자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아내다.
그는 알뜰한 아내와 살면서 근검절약을 실천해 풍족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운전하다가 목이 마를 때를 대비해 출근할 때 집에서 물통을 아예 싸온다"고 했다. 청량음료 한 병 사서 마셔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택시에서 내리면서 "젊은이,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맙네. 자네한테 오늘 한 수 배웠네"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소비가 미덕으로 통하는 사회에서 이 기사를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이 기사의 근검절약 정신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송태현·전 전남 순천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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