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급하게 고도를 높인다. 로키산맥을 넘기 위함이다. 창을 통해 내려다 보지만 얄밉게도 구름이 눈을 가린다. 약 1시간. 언뜻언뜻 맛만 보여주던 로키산맥이 드디어 장관을 드러낸다. 대부분 만년설을 이고 있는 봉우리들은 거품을 머금은 거대한 파도 같다. 저 골짜기와 능선마다 숨쉬고 있을 건강한 자연을 생각하니 순간 전율이 느껴진다. 캐나다 로키산맥 여행은 그렇게 하늘에서부터 시작됐다.캐나다 로키의 심장은 밴프다. 앨버타주 로키산맥 국립공원에 들어있는 작은 도시다. 덩치는 작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인구 7,000명 남짓한 이 곳에 한해 4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다. 오로지 관광으로만 부자가 된 곳이기도 하다.
밴프가 알려지게 된 계기는 철도공사였다. 1880년대 캐나다의 동서를 연결하는 철도공사가 한창이었다. 산맥과 자금난에 막혀 공사가 지지부진하던 중 일꾼들이 땅에 난 구멍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를 계단삼아 내려가니 계란 타는 듯한 냄새가 나는, 진한 유황온천이 있었다. 철도회사는 재빨리 이를 상업적인 온천으로 만들고 동쪽의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수입이 짭짤하자 다시 철도 공사가 활기를 띠었고, 공사 인부들의 숙박지 구실을 했던 밴프는 유명 휴양도시가 됐다. 1885년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물론 밴프에는 온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록이 펼쳐진다. 도시는 캐스캐이드산, 설파산, 노르퀘이산 등 저마다 개성이 강한 산봉우리에 포근하게 싸여있다. 그래서 밴프 여행의 첫 순서는 그 산에 오르는 것이다. 물론 험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온천을 품고 있는 설파산 정상까지 곤돌라가 운행한다. 정상에는 전망대와 식당이 있고 능선을 타고 옆의 봉우리까지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사방을 모두 볼 수 있다. 로키산맥을 수평으로 바라보는 맛은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과 또 다르다. 설산은 햇빛의 방향에 따라 모습과 색깔을 바꾼다. 여명의 붉은 기운에서 한낮의 순백색으로, 또 황혼의 노란 빛으로 시시각각 옷을 갈아입는다. 그 사이에 포근하게 들어서있는 밴프의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하루 종일 머물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밴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호수다. 아니 호수는 로키산맥 전체의 자랑이기도 하다. 빙하지형이어서 자연호가 유난히 많다. 석회암 성분이 함유돼 있어 흐르는 물은 탁하다. 그러나 고인 물은 명징(明澄)하다. 석회암 성분을 바닥에 떨군 까닭이다. 게다가 바닥의 하얀 석회성분이 빛의 마술을 부린다. 날씨에 따라 호수의 색깔이 달라진다.
밴프 지역을 대표하는 호수는 루이스호.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50㎞ 거리에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폭 4㎞ 정도의 아담한 호수이다. 아직 가장자리의 얼음만 녹고 가운데는 녹지 않았다. 6월 중순부터 호수 전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부분만 보여주는데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호수를 빙 돌아 하이킹 코스를 조성해 놓았다. 코스 중간중간에 통나무로 만든 찻집이 있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 호수를 내려다 본다. 비취빛 물에 삐죽삐죽한 산의 그림자가 비친다. 떠나기 싫다.
밴프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시내 여행. 정말 손바닥만 하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상점과 식당, 그리고 과거 개척자들의 흔적을 모아 놓은 박물관 등이 있다. 작은 마을의 상점이지만 산행 관련 세계 유명 브랜드는 없는 것이 없다. 그러나 비싸다.
시내는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도는 것이 좋다. 아침에는 출근길의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학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걸어서 가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킥 보드 등 바퀴 달린 무엇인가를 타고 간다. 아침 기온이 쌀쌀한데도 반바지와 반소매 차림이다. 워낙 추운 곳이어서 6월의 날씨는 거의 여름처럼 느끼는 모양이다.
밤거리에서는 어른들의 활기를 느낀다. 일을 마친 어른들이 식당과 바를 채운다. 찡그리는 얼굴은 없다. 모두 여유롭고, 밝고, 행복하다. 밴프의 저녁 노을 속에서 새삼스럽게 '축복 받은 땅'을 실감한다.
/밴프(캐나다)=글 권오현기자 koh@hk.co.kr
사진 이종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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