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갖는 문제점도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 해법을 모색하면서 실용주의 외교노선으로 전환했으나 그에 걸 맞는 전략·전술 부재로 국제 정세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 대통령 자신과 외교 및 안보 참모가 4강 외교를 지나치게 서두르는 바람에 정상외교의 졸속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국빈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현충일도 피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감수한 채 6일 일본 방문을 강행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지 불과 20여일 만이었다. 이어 7월초에는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고 8월 중순 이후에는 러시아 방문 일정이 잡혀 있다. . 한 달에 한 번 꼴로 정상외교를 벌이게 되는 셈이다. 의례적인 순방 외교라고 해도 숨이 가쁠 형편인데, 북핵 문제와 경제 문제 등 초미의 현안이 걸린 상황에서는 너무나도 준비가 부족한 게 당연하다.
새 정부가 4강 외교를 서두른 배경을 짚어 보면 심각성이 더해진다. 노 대통령과 참모들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우리의 독자적인 북한 핵 해법, 즉 '한국형 로드맵'을 만들어 이를 서둘러 4강에 제시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재자로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결정적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포부였다. 이때만해도 노 대통령은 대미(對美) 자주외교를 강조했고 인수위도 그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새 정부가 출범을 전후해 만든 이 로드맵을 윤영관 외교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제시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미측의 반응은 시큰둥했다는 게 정설이다. 결국 노 대통령은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 포기와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 및 경제 지원을 동시 추진한다는 내용이 핵심인 우리의 로드맵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빠졌다. 의욕이 앞선 데다 미일 전후세대의 우경화 등 국제 정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친 결과다.
로드맵이 사문화된 이후가 오히려 더 문제다. 이제는 노 대통령도 "로드맵은 중요하지 않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가 상황주의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다.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정교한 외교적 수단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모든 책임을 상황과 우리가 처한 외교적 현실에 돌리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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