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서점 '논장'을 추억의 명물로 취급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항과 이념의 공간이 이제는 삶과 문화의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앞길에 자리잡은 '논장'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책을 사기는커녕 반나절 가까이 책만 읽다 가는 손님들도 적지 않지만 대표 이재필(36·사진)씨는 늘 웃음으로 이들을 맞이한다. "우리 '논장'은 책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거든요."1997년 당시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없었던 난파선 '논장'을 인수해 인문사회과학 서점의 대표적인 성공모델로 탈바꿈 시켜놓은 이씨는 영락없는 '책방 아저씨'다. 10년째 다니던 대학의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찾아온 후배의 부탁을 덜컥 받아들여 서점을 떠맡은 지 벌써 6년째.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인문사회학의 퇴조에 밀려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던 그 무렵 그는 '공동출자식 운영'과 '문화공동체로의 변신'이란 묘안으로 위기탈출을 시도했다.
이씨는 결국 주위의 우려를 말끔히 씻고 2년만에 다시 '논장'을 일으켜 세웠다. 한때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했던 성균관대의 총학생회장직을 맡아 성공적으로 학생회를 이끌었던 이씨의 경험도 '논장'을 살리는데 밑거름이 됐다. 이씨는 "대학교수부터, 직장인, 학생들까지 쌈짓돈을 털어 출자자로 참여해준 160여명의 조합원들이 '논장'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서점마저 문을 닫았던 IMF 시절도 꿋꿋이 견뎌낸 '논장'은 현재 사회과학 전문서점을 고수하면서도 대학가 '인기서점'으로 살아 남았다. '책읽기 4종 경기대회' '독서모임' '기증도서 1,000원 판매전' 등 문화행사로 '논장'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문화공동체로 뿌리내리도록 했다.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앞으로 사회운동가, 문인, 단골손님 등으로 이뤄진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해 '논장'이 명실상부한 지역문화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저는 우리 독자들에게 기대합니다. 결국 서점은 독자들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사진=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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