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기록 다 바꿔.' '라이언 킹' 이승엽(27·삼성)이 세계 홈런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9일 현재 올 시즌 52경기에서 26개의 아치를 그린 이승엽은 경기당 평균 0.5개의 홈런을 쏘아올려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133경기 모두를 소화했을 경우 산술적으로 66.5개의 홈런을 치게 된다. 1999년 자신이 세운 국내 최다홈런(54개)기록은 물론 일본 프로야구의 타자 3명이 갖고 있는 55개의 아시아 신기록도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이승엽은 이달 내 6개의 홈런만 추가하면 세계 최연소(26세 9개월) 300홈런 고지에도 오르게 된다. 어떤 형태의 구질이든 물 흐르듯 제압하는 유연한 스윙과 절세의 파워. 이승엽이 펼치는 홈런 무공의 세계로 들어가봤다.
부챗살 타법…밀고 당기고 자유자재 이승엽의 홈런 분포도를 살펴보면 '부챗살 타법'이 단연 돋보인다. 밀어친 좌월홈런(좌중간 포함)이 8개, 당겨친 우월(우중간 포함) 16개, 중월 2개로 스프레이를 뿌리듯 좌우를 가리지 않고 공을 담장 밖으로 넘기고 있다. 99년에도 28개의 우월홈런에 좌월 18개, 중월 8개로 외야 스탠드에 있는 관중들에게 골고루 홈런볼을 선사했다.
이승엽의 최대 장점은 어떤 구질의 볼도 홈런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전천후 타격감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불 같은 강속구도, 뱀처럼 빠져나가는 슬라이더도 이승엽의 날선 방망이를 피해갈 길이 없다. 이승엽은 올 시즌 직구(13개), 슬라이더(7개), 체인지업(3개), 커브(2개), 싱커(1개) 등 거의 모든 구질을 상대로 홈런쇼를 펼치고 있다. 99년에도 직구홈런이 31개, 체인지업 8개, 슬라이더 6개, 포크볼이 4개였다.
올 시즌 이승엽의 홈런가치는 상한가다. 터져야 할 때 터지기 때문이다. 솔로홈런만 32개(59%)를 터뜨렸던 99년과는 달리 올 시즌에는 솔로는 8개인데 비해 투런이 12개, 스리런이 6개나 된다. 그것도 전세를 뒤집는 역전홈런이 4차례나 있었고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홈런은 7차례, 기선을 제압하는 선제홈런은 6차례나 된다.
실투 용납않고 볼카운트 불리할 때 배팅 이승엽의 승부근성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사실은 볼카운트에서도 드러난다. 이승엽은 절반 가까운 홈런(12개)을 투스트라이크에 몰렸을 때 만들어냈다. 1회 7개 등 3회까지 모두 14개(99년엔 24개)의 홈런을 터뜨린 이승엽은 초구에서도 5개의 아치를 그려낼 만큼 자신감 넘치는 적극적인 배팅을 선보이고 있다.
또 일반적으로 '좌타자는 좌투수에 약하다'는 속설과 달리 이승엽은 좌완 투수에게도 모두 6개의 홈런을 뽑아냈다.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는 영리함도 보였다. 가운데 높은 공(8개)과 한가운데를 파고 들어오는 공(8개)은 여지없이 담장 밖으로 날려보냈고 가운데 낮은 공과 바깥쪽 높은 공도 각각 4개씩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몰아치기에 능하다는 점도 '홈런공장장' 이승엽의 비결 중 하나다. 더블헤더로 펼쳐진 지난달 15일엔 하루에만 무려 4개의 아치를 그렸고 이달 4일에도 3개의 홈런을 양산했다. 같은 날 2개의 홈런을 쏘아올린 것만도 모두 4차례다. 99년에는 같은 날 3개의 홈런을 몰아친 것이 3차례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구 홈구장에서 19개의 홈런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대구구장보다 좌우펜스가 5m 더 넓은 잠실구장과 펜스높이가 1.8m 높은 부산구장, 한가운데 구장길이가 3m 더 긴 수원구장에서 홈런이 1개도 안 터져 '옥의 티'로 남고 있다. 이승엽의 '구장편식증'을 잘못 꺼내면 이승엽의 팬들로부터 단번에 반박이 들어온다. 이승엽의 홈런 비거리는 평균 117.3m(99년 118m)로 전세계 어느 구장도 넘길수 있는 파워를 가졌다는 항변이다.
홈런 나와라 뚝닥! 방망이와 타격폼의 비밀 이승엽은 지난해까지 34인치에 930g수준인 국산 BMC배트를 사용했으나 올 시즌 들어 10g정도 줄어든 미국산 징어(Zinger) 배트도 함께 쓰기 시작했다. 배트 자체의 중량감보다 배트스피드를 높여 더 많은 힘을 싣겠다는 계산이다. 결과는 대성공. 5월에 15홈런으로 월간 최다홈런기록과 타이를 이뤘고 이달 들어서도 7경기 만에 5홈런을 치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승엽은 "BMC와 징어배트가 손에 가장 잘 맞는다. 그러나 방망이보다는 동계 전훈때 웨이트 트레이닝 등으로 파워를 불린 것이 홈런을 많이 치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99년엔 외다리 타법으로 54개 홈런을 터뜨렸지만 지난해부터 이를 버리고 두 다리를 땅에 붙이고 타격하는 스탠스로 돌아온 것도 주효하고 있다.
박흥식 삼성 타격코치는 "이승엽은 힘으로 공을 당겨서 넘기는 '파워히터'가 아니라 타이밍과 손목 스냅, 허리 힘을 이용, 자유자재로 밀어치고 당겨칠 줄 아는 테크니션"이라며 "경기 전 1시간, 경기 후 30분 정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력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박노준 SBS해설위원도 "구질을 파악하는 이승엽의 눈이 99년보다 월등히 향상됐다"며 "어느 방향에서 공이 날아오던 담장 밖으로 공을 넘길 수 있는 타격폼을 가졌다"고 추켜세웠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 빅리그서도 통할까
'국민타자' 이승엽의 방망이는 과연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이승엽은 올 시즌을 끝으로 빅 리그 진출을 공언한 상태.
많은 야구 전문가들은 이승엽의 실력이면 미국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이승엽의 홈런 비거리가 이를 증명한다는 것. 실제 평균 117.3m 비거리는 빅 리그 모든 구장을 넘길 수 있다. 그러나 홈런만으로 빅리그 안착을 장담할 수 없다. 생소한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적응과 주변환경 등 경기 외적인 변수도 만만찮기 때문. 언어장벽과 코칭스태프, 동료들과의 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이승엽은 일단 메이저리그 투수의 구질 파악에 상당한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빅 리그 적응에 최소한 1∼2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허 위원은 특히 "이승엽의 포지션인 1루수는 3할대 타율과 홈런 30개, 100타점 정도 때려내야 하는 자리"라며 "이승엽이 이적 첫해 타율 2할7푼 전후와 홈런25개 80타점만 쳐내도 대성공"이라고 덧붙였다.
구경백 경인방송 해설위원은 "미국 진출 후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타격폼을 바꾼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즈키 이치로의 변신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비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LA다저스 한국인 스카우트 안병환씨는 "한 시즌 정도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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