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북한 문제 전문가로 꼽히는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정치학과 교수로부터 북한 핵 문제 해법과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주―북한의 핵 개발 실태와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리들이 듣고 있는 것은 모두 미국의 정보다. 연구·개발을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핵무기로서 사용할 수 있는 탄두화가 가능한가가 초점이다. 당장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왜 핵 개발을 무리하게 추진한다고 보는가.
"군사적 실용화와 외교 카드 두 가지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용화를 위한 대규모 영변 핵 시설이 발각된 뒤 외교 카드로 전환해 사용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체제 유지를 위한 목적은 하나다.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핵 개발이 없었다면 미국이 상대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핵 의혹들은 빌 클린턴 정권의 대북 기조가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유지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에서 추진했다는 보험설과 플루토늄을 포기하면서 뒤로는 농축우라늄 계획을 진행해 왔다는 속임수설이 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입장은 무엇인가.
"일본 정부의 입장은 한국 정부보다 명확하고 강하다.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 피폭 경험을 갖고 있는 일본 국민은 핵에 알레르기 감정이 있다. 강대국의 핵무기는 상호 억지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비정상성과 붕괴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북한 핵은 억지가 통하지 않는 공포다.
북한 체제 붕괴시 실제 핵 사용 가능성을 생각하면 일본의 핵무장도 억지 효과가 없다. 따라서 일본은 절대로 북한 핵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동시에 가능한 한 평화적 해결을 원하고 있다."
―현재 한·미·일·중 등 관계국간 입장차가 잘 조정됐다고 생각하는가.
"일시적으로는 어느 정도 조정이 됐다. 그러나 서로 이해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은 분단의 현장 국가이고 로컬 파워다. 글로벌 파워인 미국은 다르다. 일본은 그 중간이다.
한국은 평화적 해결에 무게를 두고 있고 미국은 핵 저지에 무게를 두며 경제 제재, 군사 행동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는 핵 저지 쪽에 중점을 둔다.
중국도 핵 저지와 평화적 해결에 동의하지만 북한 체제 보장을 통한 한반도 안정에 강조점을 주고 있다. 당분간은 외교 노력을 기울인다는 데 모두 일치하고 있지만 추가적 조치나 강경한 조치가 표면화하면 미묘한 차이는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제재 문제가 서서히 운위되고 있는데.
"현재 얘기되는 마약 규제, 만경봉호 검사 강화 등은 아직 경제 제재의 전단계다. 분명한 위법행위를 규제하자는 것으로 여러 나라가 다같이 실시하면 실제적 제재 효과가 생긴다. 북한의 에너지와 외화수입원만 봉쇄해도 압력 효과는 막대하다.
여름까지는 외교의 계절이다. 가을 이후에도 북 핵이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의 다음 단계 요구가 나올 것이다. 한국에 대북 경협과 금강산 관광, 남북 철도 연결의 중단을 요구하거나 중국에도 석유 지원 중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북 핵 문제는 해결 과정에서 현재 어디쯤 와 있다고 생각하나.
"미국은 핵 연료봉 재처리를 넘어서는 안 되는 '금지선(레드 라인)'이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북한이 재처리를 공언했는데도 미국은 민감한 대응을 피하고 있다. 시간을 갖고 해결하려 한다는 방증이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상대가 더 안 나가면 우리도 안 나간다는 불안정한 소강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은 2중, 3중의 대북 압박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도 사태를 최후 단계까지 에스컬레이트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어느 시점에 타협해올 것이다. 북한이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실험 발사 등 추가적 도발을 해서 미국이 경제 제재와 핵 시설에 대한 한정적 군사 공격을 검토하게 되면 진짜 위기다.
경제 제재와 군사 제재는 경계가 가깝다. 경제 제재의 시작이 분기점이다. 교섭이 진전되지 않으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위험하다. 그러나 이라크처럼 미국이 군사 행동을 할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군 희생이 클 것이기 때문에 미 군부조차 반대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참가하는 다자간 협의가 열릴 것으로 생각하는가.
"북·미·중 3자 회담을 한 번 더하고 나서든 바로든 5자 협의나 러시아도 참가하는 6자 협의가 결국은 시작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3자 회담과 6자 협의를 동시에 병행시켜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자간 협의로 북 핵이 해결된다면 한국과 일본에는 큰 이익이 생긴다. 2+4이든 4+2이든 동북아 6자 협의가 위기 극복의 시스템으로 떠오르게 된다."
―북 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지난해 북·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국교 정상화와 경제 협력은 그대로 진행되나. 북한이 핵을 포기한 뒤에 줄 '대담한 지원'에서는 일본의 경제 협력이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한데….
"일본에는 납치 문제가 또 있다. 납치 문제가 해결돼도 핵 문제는 남겠지만 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납치 문제도 진전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핵과 납치를 포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북한에게 핵 문제는 최대의 위기이자 최후의 기회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입장에서는 핵을 포기할 경우 사담 후세인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협의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최종적으로 핵 포기와 체제 보장을 교환하는 '로드맵(단계적 이행안)'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식의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는가.
"전체 로드맵을 달성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릴 것이다. 불안정한 소강상태보다는 안정의 제도화가 바람직하다.
1994년의 제네바 핵 합의보다는 더 크고 다이내믹한 협의틀이 될 것이다. 일·북 국교 정상화도 그 일부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생존이 최대 목표다. 어떤 단계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김정일의 체면을 살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핵과 관련한 모든 국제합의를 준수한다는 일·북 평양선언을 북한이 재확인하고 미국이 이를 추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일 정부에 주문하고 싶은 것은.
"우선 부시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혐오감이 너무 강하다. 미국이 협상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데는 부시 개인의 북한에 대한 불신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고, 이를 네오콘(신보수주의) 세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북한에게 당장 무장해제부터 하라는 것은 무리다. 부시 정권이 북한 체제 전복까지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북한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미국은 김정일 체제 붕괴를 원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고립화 정책이 진전되면 다시 돌아가기 어렵다. 가을 이후가 되면 대선이라는 미국의 국내 정치 요소가 들어온다. 완전히 미국 문제화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연말, 연초가 위험하다.
일본은 납치 문제도 중요하지만 외교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지금 대미 관계를 바른 방향으로 수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반미를 선거에 이용해 승리했지만 지금 미·독 관계는 회복이 어려운 상태다. 한국은 그럴 처지가 아니다.
한국도 내년에 총선이 있지만 노 대통령은 지지기반이 손상되더라도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택한 것으로 평가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일본과 함께 북한에 대한 압력 수위를 높이는 데서 어디까지 협력이 가능할 것인가 선택해야 할 시련의 시기가 올 수도 있다는 데에 대비해야 한다."
/도쿄 글·사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오코노기 교수는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58) 게이오(慶應)대 정치학과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 북한 연구가로 꼽힌다.
과거 일본의 북한 연구가들이 친북 또는 반북으로 이념 편향성이 강했던 것과 달리 북한 체제와 외교정책을 과학적·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으로 북한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게이오대에서 북한·한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와 미국 하와이대, 조지 워싱턴대에서 객원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북한도 세 차례 방문했다.
주요 저서로 '조선전쟁' '냉전기의 국제정치' '기로에 선 북한' '일본과 북한' '조선 문제 전후 자료' 등이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친교도 깊어 한국·북한과의 외교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자문도 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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