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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22> 과욕이 부른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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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22> 과욕이 부른 상처

입력
200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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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사업을 하면서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났다. 앞서 밝힌 대로 어려운 고비에 나를 도와준 은인도 만났지만, 결정적 순간에 내게 등을 돌린 사람도 만났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거물급 인사를 만난 적도 있다.그렇게 만난 사람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이 워싱턴 포스트 기자를 지냈던 잭 앤더슨이다. 내가 앤더슨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거물급 인사를 만나면 모르고 지나치던 일을 알게 되기도 한다.

미국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앤더슨은 군 출신의 한국 정계 실력자 박종규씨와 친분이 깊었고, 한국 공군의 전투기 구매 과정에도 깊숙하게 관여했던 것 같다.

당시 무기 거래의 일반적인 관행은 이른바 '카운터 트레이드' 방식이었다. 쉽게 말하면 한국이 미국의 전투기를 사주는 대신, 미국이 다시 전투기 구매액의 일정 비율 만큼 한국 물품을 사주는 거래 방식이다.

'카운터 트레이드' 방식의 무기 거래에서 미국이 사야 할 한국 물품 공급권은 대부분 무기 거래 과정에 참여했던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공공연한 관행이었다. 판로가 확실한 만큼 물품 공급권을 얻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이권이었다.

앤더슨과 박종규씨도 한미 전투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그런 이권을 챙겼다. 미 전투기 회사인 노드롭사에서 컴퓨터 프린터 리본 독점 공급권을 얻은 두 사람은 서울 정밀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위기를 맞았다. 공장 건립이 거의 끝나 갈 무렵 박종규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무렵 앤더슨이 어디 선가 소문을 듣고 자신의 사위 피터 블루를 내게 보냈다.

나보고 서울정밀을 인수하라는 제안이었다. 일단 판로가 확실했기 때문에 인수를 조심스럽게 검토해 보았지만 박종규씨가 죽고 나서 유산상속 문제가 복잡한 상황이어서 불가능했다.

그러자 앤더슨이 다시 제안을 했다. 자신에게 컴퓨터 프린터 리본을 공급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당장 세기 포러스라는 컴퓨터 부품 회사와 계약해 앤더슨에게 컴퓨터 프린터 리본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나도 무기거래 커넥션에 대해 조금 알게 됐다. 당시 앤더슨의 입김은 상당했다. 노드롭사 뿐만 아니라 노드롭사와 관련된 업체들도 모두 자기가 공급하는 컴퓨터 프린터 리본을 쓰도록 압력을 넣었다.

한마디로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였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품질 확보였다. 우리가 공급하는 컴퓨터 프린터 리본의 품질이 좋지 않다고 항의가 쏟아졌다. 그나마 앤더슨 덕분에 이럭저럭 유지를 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나와 앤더슨의 사위 피터 블루가 욕심을 냈다. 노드롭사가 아닌 일반 시장을 상대로 하는 미국 회사를 따로 차린 것이다. 이 때도 물론 재정 파트너는 정영우가 있는 쌍용 미국 지사였다.

하지만 이 회사는 오래 가지 않아 거덜나고 말았다. 가뜩이나 리본의 품질이 좋지 않은 마당에 사장으로 있던 피터 블루가 딴 주머니를 차고 장사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판매 대금 중 무려 50만 달러를 횡령했다.

하지만 피터 블루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거래 업자들은 돈 달라고 아우성을 치니, 결국 내가 돈을 물어야 했다. 억울한 마음에 변호사를 고용해 피터 블루를 상대로 미국에서 소송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의 판단 착오였다. 변호사에게 1년간 무려 5만 달러나 주고 소송을 벌였는데, 경제사범에 대한 미국 법정의 재판은 부지하세월이었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속 사정을 뻔히 알고 있던 앤더슨마저 내게 협박을 가했다. "내 사위를 계속 괴롭히면 미국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만들겠다." 결국 돈과 시간만 날리고 소송을 포기해야만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겁 없이 시작한 프린터 리본 장사는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쓸데없이 욕심을 부린 데다 잘 모르는 미국 사람들을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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