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내 진보의 상징인 서울 명동 향린교회가 8일 홍근수(65) 목사 은퇴예배를 가져 후임 조헌정(49) 목사 시대를 열었다.홍 목사는 이날 예배를 끝으로 1987년 2대 담임을 맡은 이래 16년 5개월간의 목회를 마치고 조 목사에게 자리를 넘기며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엇갈린 입장이었지만 바람은 한결 같았다. "바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공동체 교회, 입체 교회, 초교파 교회, 평신도 교회의 추구라는 교회 창립정신을 이어갔으면 하는 겁니다. 물론 공동체, 초교파, 평신도 교회라는 외형적 조건은 이제 무너지고 말았지만, 정신만은 간직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홍 목사는 지난달에 희년(50년)을 맞은 향린교회를 반석에 올려놓은 인물. '통일목사''반미목사'라는 별칭과 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투옥 이력에서 보듯 암울했던 시절 줄곧 사회와 호흡하며 전형적인 '투사'로 살아왔다. 조 목사는 홍 목사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던 80년대 미국으로 갔다. 유니온 신학대에서 공부한 뒤 88년 메릴랜드에 소재한 벨츠빌 한인교회의 담임목사로 활동했다. 겉으로만 본다면 우리 사회와 향린교회가 고단한 삶을 살았던 시절에 그는 비켜서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삶의 농밀함은 결코 홍 목사에 뒤지지 않는다. 조 목사는 60년대 이후 미주지역 민주화운동의 구심이었던 '북미주기독학자회'을 주도했다. '빨갱이 목사'라는 별명은 90년대초 구속된 홍 목사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얻은 것이다.
두 목사의 이력은 비슷하지만 조 목사는 적잖은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향린교회의 정체성을 간직하면서도 시대변화에 맞춰 교회도 적응해야 한다는 소명을 피력, 교회의 '같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임을 시사했다.
민중·해방신학을 공부한 조 목사는 99년 미국 장로교 '수도노회'의 첫 동양인 회장을 맡을 정도로 미국에서도 영향력 있는 목회자이다. 민중신학의 이념이 지금시대에도 유효한 것인가를 묻자 조 목사는 정색하며 말했다. "모든 신학은 상황신학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신학은 주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70, 80년대와 똑같은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민중신학이라는 점은 변할 수 없습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