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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가구"/긴 세월이 우려낸 그윽한 멋과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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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가구"/긴 세월이 우려낸 그윽한 멋과 향…

입력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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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가에 진열된 첨단 디지털 기계들은 하루가 다르게 최신식 기능을 달고 나와 손님을 유혹한다. 그러나 기계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지친 사람들은 이제 역으로 느리고 편안하고 자연적인 것들을 추구한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라뜨레'는 자연을 강조한 원목가구를 만드는 곳이다. 매장에 들어서면 부드러운 색상의 목조 가구들이 손님을 맞는다. 의자 소파 식탁 침대 등 언뜻 보면 일반 원목가구와 다를 바 없지만 누룽지 마냥 따뜻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 걸쳐 앉으면 '끼익' 하고 정겨운 소리가 날 것도 같은 게 마음이 푸근해진다.대청마루 서까래… 가구로 다시 태어나

이 가구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내는 비밀은 원자재에 있다. 모두 한옥을 허물면서 나오는 목재로 만들었다. 대청마루 서까래 등 백년 넘는 세월을 여러 집주인과 함께 살아내 온 나무들이 이제는 가구가 돼 '제2의 삶'을 살며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장작으로 쓰일 뻔한 나무를 구해낸 이는 '라뜨레' 손건우 대표. 20대 시절 스스로를 '걸레'로 일컬었던 중광스님의 상좌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던 전력 때문일까. 손 대표는 조상의 숨결이 묻은, 유서깊고 오래된 것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하다.

"우리는 너무 버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외국 친구들을 만나면 '할아버지가 쓰던 가방' '할머니가 쓰던 차'라며 자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무슨 물건이든 채 10년을 쓰지 않고 갖다 버리기 일쑤에요. 오래된 한옥을 허물면서 나오는 목재들을 갖다 버리거나 불로 때버리는 것을 보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옥에서 나오는 나무는 오랜 기간 자연스럽게 건조된 최고의 목재다. 한옥 재료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소나무.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나무며, 이 땅에 사는 사람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나무라는 것이 손 대표의 설명이다.

집과 나무와 사람은 하나

한옥에서 나온 목재가 가치를 지니는 또 한가지 이유는 거쳐간 사람들의 '손때'가 묻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나온 나무는 그 집에 어떤 이들이 살았는지를 말해줍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산 집에서 나온 나무는 꾸준히 손질하고 닦아서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반대로 게으른 이들이 산 집은 나무도 벌레를 먹거나 푸석푸석하기 일쑤죠. 집과 나무와 사람은 하나입니다. 아무리 으리으리한 한옥이라도 사람이 오랜 시간 살지 않은 집에서 나온 목재는 힘이 없어서 쓸 수가 없어요."

한옥 가구를 쓰기 위해서는 나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무는 잘라내는 순간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수백년을 두고 아주 천천히 건조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숨을 쉰다'. 즉 건조하면 수축됐다가 물기를 머금으면 팽창되기를 반복하며 제대로 숨을 쉬어야 건강한 나무라는 뜻이다.

아무리 아귀를 잘 맞춰서 만들었다고 해도 나무의 특성상 수개월이 지나면 틈이 약간 벌어지거나 표면이 고르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무가 숨을 쉬며 움직이기 때문에 쇠못을 박으면 갈라지기 쉬워 웬만하면 못을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나무 못을 쓴다. 오랜 세월 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목재이므로 되도록 크게 모양을 바꾸지 않고 생긴 대로, 휘어진 대로 짝을 맞춰 만든다.

손 대표는 모양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다른 물건으로 바꿔주거나 전액 현금으로 보상해준다. "한옥 가구는 사람의 손때가 생명인데 몇 달이라도 쓰면서 손때를 더 묻혀 주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는 넉넉한 설명이다.

지난 7월부터 한옥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손 대표는 한옥을 허문다는 곳이면 아무리 멀어도 달려간다. 포크레인으로 '밀어 버리면' 나무가 손상돼 못쓰게 되기 때문에 한옥을 지어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 가서 조심스레 한옥을 해체한다. 목재 외에 기와나 주춧돌, 주인이 버리고 간 가구 등도 소중히 모아뒀다가 벽에 걸거나 정원에 두는 등 앤틱(골동품) 분위기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한다.

"30대만 돼도 어릴 때 대청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거나 딱딱한 바닥에 누워 풀벌레 소리를 벗삼아 잠자던 기억이 한번쯤은 있을 겁니다. 한옥으로 만든 가구를 쓰는 사람들이 잊었던 지난 날의 기억과 정서를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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