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성향 분석지난 1년간 우리 국민의 이념 지형도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해 고려대 김병국(金炳局) , 이내영(李來榮) 교수와 함께 작성했던 이념성향에 관한 조사 문항 중 여덟 개를 이번 조사에 다시 사용하였다.
지난 해 조사에서는 요인분석을 통해 국가보안법개폐, 공공기관파업, 호주제 개폐 문제 등(설문 2, 6, 7)이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기본권 인식 요인과 대북 지원과 통일문제 (설문 1, 3·자세한 문답 내용은 한국일보 인터넷 www.hankooki.com에서 참조)가 결합된 대북인식 요인이 발견되었다.
지난 해와 비교해 볼 때, 올해 조사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여성고용할당제와 호주제 폐지(설문 7, 8)로 이뤄진 여성관련 요인이 새로 뚜렷이 부각한 것이다. 한편, 대미관계인식(설문 4)이 별도의 요인으로 존재했던 작년과는 달리 기본권 인식에 편입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1년간 특히 대미 인식과 여성권 인식에 있어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미 인식과 관련해서는 훨씬 친미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해 가는 경향이 있으며, 호주제나 여성할당고용제와 관련해서는 중도적 입장이 줄고 찬반 양쪽으로 양극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조사에서 발견된 세 가지 요인들은 자기 이념 평가에 걸어 본 다중 회귀분석에서 모두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권 인식 요인이 가장 큰 설명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여성권 인식에 있어서 남녀간의 차이는 어느 정도 존재했지만, 자기이념성향과의 관계는 남녀 모두에게서 발견되었다. 예컨대 호주제 문제의 경우 남성은 전반적으로 여성보다는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진보적일수록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성향은 남녀 모두에게서 나타났다 (그림 1 참조).
지난 해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대북 인식요인과 기본권 인식요인에 의해 주로 결정되었다. 반면에 올해 노 대통령 국정 업무 수행평가는 주로 여성권 인식과 대북 인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의 의미는 국가보안법, 노동자 파업 등의 이슈와 관련해 진보적인 이념 성향 때문에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집단은 이제 그런 이유로는 노 대통령의 국정업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노 후보 지지 집단 중에서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으나, 아직 그 자리를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이 대신 채워 주지는 않고 있는 형국이다. 실망은 순식간에 일어나며 신뢰는 더디 형성되는 법이다. 물론 지난 해에는 대통령 후보로서의 노무현에 대한 지지도이고, 올해에는 대통령의 국정업무수행에 대한 평가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성향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호주제 폐지와 여성고용할당제가 노 대통령 지지와 밀접한 관련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사안들과 관련해서는 진보적인 지지집단이 여전히 기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들 역시 노 대통령이 여성 관련 사안들에 보수적 입장을 취한다면 빠르게 이탈할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 둬야 할 점은, 노 대통령의 업무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여성권 요인과 관련해서는 특히 보수적이지만 기본권 요인과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 2 참조). 이는 노 대통령이 앞으로 개혁적인 정책을 펴 나간다고 할 때, 국가보안법이나 파업 관련 등의 사안보다도 호주제 폐지나 여성고용할당제가 보수적인 집단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김 주 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盧 국정수행 평가분석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업무 수행에 대해서는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더 부정적인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향후 5년간의 경제에 대한 전망이 긍정적일수록 대통령 업무수행에 관한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의 비율은 국정업무수행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60%에 달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20∼30% 안팎에 불과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발언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도 언론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 중에 노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이 두 배 가까이 더 많았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언론이 의도적으로 다룬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터넷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3 참조).
다중회귀분석을 통해 살펴 본 결과, 5년 후의 경제 상태 전망을 밝게 할 수록,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언론의 의도적인 보도'라고 생각할수록 노 대통령의 국정 업무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 대통령의 방미 외교에 대해 실용적이며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수록, 신당 창당 추진에 대해 지지할수록 역시 노 대통령의 국정 업무 수행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었다.
다만, 방미 외교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만은 노 대통령의 원래 지지집단인 진보적인 성향의 집단이 '저자세 외교이며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발견 되었다. 방미 외교로 인한 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실망감은 분명히 드러나고 있으나 보수적인 집단의 노 대통령 지지 경향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외교·안보
외교·안보분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식은 지난 해에 비해 다소 보수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북 지원과 대미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인식돼온 젊은 세대와 화이트칼라의 입장 변화가 뚜렷했다.
대북 경제 지원과 관련,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과 '인도적 지원에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각각 22.2%, 47.4%로 지난 해(15.0%, 44.1%)보다 다소 많아졌다. 반면 '현 수준 지속'은 지난 해 23.3%에서 19.8%로 줄었고 특히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은 지난 해(16.6%)의 절반 수준인 8.4%에 불과했다.
연령별로는 20대의 경우 '전면 중단'이 지난 해 7.7%에서 올해 16.4%로 2배 이상 높아진 반면 '확대' 응답자는 지난 해 22.0%에서 올해 7.3%로 크게 줄었다.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와 학생층에서 '확대' 응답이 각각 지난 해의 절반 또는 4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대북 경제 지원에 대한 이 같은 보수화 경향은 지난해 10월 이후 불거진 북핵 문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지난 해 7.3%였던 '즉각 철폐' 응답이 올해 6.2%로 조사된 것을 비롯, '새로운 법 대체'(34.5%→36.8%), '부분 개정'(40.4%→39.4%), '현행 유지'(12.2%→12.2%) 등 모든 항목에서 지난 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통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서는 '속도 조절'을 선택한 응답자가 45.6%로 가장 많았지만 지난 해(51.6%)보다는 다소 줄었다. 반면 '서두를 필요 없다'와 '통일할 필요 없다'는 부정적인 대답은 지난 해 각각 28.7%, 4.3%에서 올해 34.0%, 5.8%로 다소 늘었다. 이에 따라 '꼭 해야 한다'는 응답도 지난 해(15.2%)보다 약간 줄어든 14.2%였다. 특히 '서두를 필요 없다'는 응답자는 모든 연령층에서 4∼8%포인트 늘었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선 우리 국민의 보수화 및 실용주의적 성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난 해에는 '미국 중심 외교 탈피'(31.8%)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10.3%)는 의견이 42.1%에 달했지만 올해는 절반 수준인 23.0%(18.2%, 4.8%)에 불과했다. 반면 '한미동맹 강화'는 17.3%로 지난 해(6.3%)보다 세 배 가까이 늘었고, 지난 해 50.1%였던 '우호관계 유지'도 58.5%로 증가하는 등 전체적으로 대미관계에서 감정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30대의 경우 '한미동맹 강화' 응답자가 지난 해 2.8%에서 올해 13.1%로, '우호관계 유지'도 39.5%에서 56.0%로 크게 늘어나는 등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였다. 서울·충청·호남지역, 월 소득 300만원 이상, 대재 이상, 학생층 등에서 '한미동맹 강화'와 '우호관계 유지' 등 응답이 지난 해보다 25%포인트 이상 큰 폭으로 늘어났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5년후 경제상태
5년 후 자신의 경제 상태에 대한 국민의 전망이 지난 해보다 더 비관적으로 나타났다. 나빠진 경제 상황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심각하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자는 45.3%로 지난 해(63.6%)보다 18.3%포인트나 떨어졌다. 반면 '나빠질 것'(11.5%)이라는 응답이 지난 해(4.7%)에 비해 6.8%포인트 늘었다. '변화가 없을 것'(40.8%)이라는 답은 지난 해(30.5%)보다 10.3%포인트 증가했다.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자영업(15.1%) 블루칼라(14.9%)에서 상대적으로 많아 서민·중산층의 열악한 경제 사정을 알게 한다. 월 3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53.8%), 대재 이상의 고학력층(55.4%)에선 '좋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와 대조적이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52.7%)의 낙관적 전망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자(35.4%)보다 크게 높아 이들의 현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큼을 알 수 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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