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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60>두 얼굴의 끈끈이주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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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60>두 얼굴의 끈끈이주걱

입력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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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식충식물이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부르지만 곤충을 포식하는 방법과 전략은 제각각 다릅니다. 색이나 무늬, 독특한 냄새로 유혹한 뒤 찾아온 곤충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지요. 주머니나 뚜껑이 달린 함정을 파기도 하고 끈끈이로 붙잡기도 합니다.파리지옥 같은 식물은 곤충이 오면 적극적으로 양 옆의 잎으로 창살 달린 트랩처럼 맞물리게 하는데 그 시간이 30분의 1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한번 들어간 곤충이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뚜껑을 달고 있는 식물, 네펜데스처럼 함정이 너무 깊어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식물, 통발처럼 물속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식물 등도 있습니다.

지금 꽃시장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기기묘묘한 식충식물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있지요. 이 식충식물을 좋아하는 동호회가 생겨나고 세계적으로도 이런 모임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것은 누가 뭐래도 끈끈이주걱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이 식물은 희귀성 때문에 보호대상이지만 이건 자생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잘 아는 종류인데다가 최근 조직배양 기술을 통해 수많은 끈끈이주걱이 복제되어 팔리고 있으니 친근하다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지요.

끈끈이주걱은 이름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끈끈이전법을 씁니다. 작은 주걱처럼 생긴 잎에 선모(촉각모라고도 합니다)가 달려 있습니다. 이 부분이 아름답고도 무서운 기관입니다. 끝이 빨갛게 보이는 이 선모에는 보통 이슬방울 같은 것이 맺혀 있습니다. 햇볕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데다가 달콤한 냄새까지 풍기니 곤충이나 사람이나 모두 그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지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든 작은 곤충은 끈적거리는 선모에 닿으면 빠져나갈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일단 손에 잡힌 먹이라고 생각하는지 몇 십분에서 몇 시간에 걸쳐 아주 천천히 조여 오지요. 몸부림을 칠수록 그 올가미는 점점 조여지고 선모를 움직여 곤충을 적절한 위치로 옮긴 뒤 먹어 버리지요.

어떻게 먹냐구요? 잔인하게도 녹여서요. 이슬처럼 맑다고 생각되지만 질식할 만큼 많이 분비되는 끈적한 소화액으로 며칠 동안 단단한 껍질을 녹여 흡수합니다. 끈끈이주걱을 보노라면 어떻게 그렇게 작고 연약하며 섬세한 식물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한여름에 청순한 흰 꽃을 피우는 이 식물의 두 얼굴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식충식물의 세계를 보고 있으면, 순종적이고 피동적이라는 식물의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고 식물세계의 무한성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세상을 살면 살수록 사람을 잘 모르듯 말입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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