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 같이 보낸 40여년은 바로 제 삶의 축소판이었습니다."시인 구자룡(58·사진)씨가 한국일보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중학교 2년생이던 1961년. 글재주가 뛰어났던 구씨는 그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발표 전날 밤잠을 설치며 기다리던 한국일보를 아침에 보는 순간 가슴이 요동쳤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보기좋게 낙방. 작가의 길을 꿈꾸던 까까머리 중학생의 청운의 꿈은 산산이 깨어졌으나 이를 계기로 구씨는 한국일보와의 '악연'을 인연으로 바꾸어 버렸다.
"도대체 왜 떨어졌을까?" 낙선 이유를 곱씹던 구씨는 당선작을 꼼꼼히 읽다가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됐다. 큰 글씨의 제목과 기사, 사진들에 빠져들면서 자신이 신문을 펼쳐 든 이유까지 잊어버렸다.
"보물섬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기사, 사설, 칼럼 등을 읽으면서 문학작품에서 느끼지 못했던 재미와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후 구씨는 한국일보를 보며 기억할 만한 글을 가위로 오려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매주 일요일 유명 작가들이 손수 그린 스케치와 글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던 '일요 화랑'과 '나의 신작' 이라는 연재물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모았다. 또 음악·미술·문학 관련 기사는 그의 노트의 단골 손님이었다. 구씨는 지금까지 100페이지 분량의 노트 수십 권에 한국일보의 주요기사를 스크랩 해오고 있다.
30년간 국어교사로 일하며 20여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던 구씨는 2001년 정년 퇴임했다. 그러나 구씨는 지금도 자신이 제작한 한국일보 역사책들을 꺼내 읽으며 당시를 회상한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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