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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너츠!

입력
2003.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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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프라이버그 등 지음·이종인 옮김 동아일보사 발행·1만5,000원"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을 위해 깨지기 쉬운 물건이나 무거운 짐은 반드시 앞좌석 밑에 두시고 선반 속에는 가벼운 물건을 보관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내에서는 비행기 통신과 항법 장비에 영향을 미치는 휴대용 전화기, CD플레이어 사용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특히 휴대용 전화기를 가지고 계신 손님께서는…" 처음 비행기 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기내 안내방송을 유심히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국내선 탑승객은 순전히 시간 절약이라는 이유 말고는 비행기를 타야 할 이유를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다. 그럼 이런 방송은 어떨까.

"어떤 노래에 따르면 애인과 헤어지는 방법이 50가지라고 합니다만 이 비행기에서 비상 탈출하는 방법은 6가지 뿐입니다. …비행기가 물 속에 잠기면 의자 밑부분의 쿠션을 떼내 버리고 그 밑의 줄에 꼭 매달려 잘하는 수영 스타일로 헤엄치면 됩니다. …만약 흡연하다가 들키면 어떤 조치가 있는지 잘 아시죠? 그런 승객은 비행기 날개 위로 나가 우리가 자신 있게 내놓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관람토록 합니다…."

안내방송을 재미있게 한 번 바꿔본 거냐고? 천만에. 이건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30년 전부터 해오고 있는 안내방송의 일부이다. 사우스웨스트는 지난해 CNN머니가 선정한 '30년 동안 주주들에게 가장 많은 수익을 안겨준 기업'이다. 올해까지 치면 무려 31년 동안 이 회사는 흑자를 냈고 연평균 주가수익률만 26%이다. 세계 2위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이 9·11 테러 등의 여파로 파산하는 동안에도 사우스웨스트는 계속 흑자 행진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 2위를 다투는 저가 할인 항공사 사우스웨스트의 독특한 경영 전략과 기업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기업 성공 사례를 담은 경영서나 언론을 통해 널리 소개된 이 회사와 최고경영자 허브 켈러허의 경영 방식을 농밀하게 엿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책 제목 '너츠(nuts)'는 '머리가 돈, 열광적인'의 의미로 사우스웨스트 기업 문화를 상징하면서, 기내식인 땅콩(peanuts)의 줄인 말이기도 하다.

켈러허는 변호사 출신으로 사우스웨스트 '개사 공신'이었으며 기존 항공사의 방해 공작 등 난관을 넘어 1971년 취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사우스웨스트 기업문화 정착의 대들보였던 그의 성공 비법은 틈새 시장을 노린 저가 전략과 유머 경영으로 요약된다.

저가 전략의 원천은 업계 관행과는 다른 노선 전략, 불요불급한 비용의 절감, 항공기 운항 효율 최대화이다. 사우스웨스트는 기존 항공사들이 거점 공항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노선을 정한데 반해 짧은 거리의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직선 운항 전략을 고수했다. 시간 낭비를 초래하는 연결 운항을 도입하지 않았다. 조종사 훈련이나 정비 교육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종은 보잉737만 썼다. 착륙 후 이륙하기까지 공항 내 비행기 체류 시간을 기존 항공사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고 대신 운항 횟수를 늘렸다.

세계 항공업계가 만성 불황에 빠져들면서 앞다투어 저가 할인 전략을 만드느라고 부산하지만 사우스웨스트는 30년 전에 이 방식을 도입했다. 지금은 일반화한 성수기 비수기 요금 이원 체제도 사우스웨스트가 만든 혁신 전략의 하나였다. 그들의 방식은 절반쯤 좌석이 비더라도 요금은 받을만큼 받자는 것이 아니라, 값을 내리고 좌석을 모두 채워 운항하자는 것이었다.

시장 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노선의 요금을 약간 올리는 게 어떠냐는 대주주의 제안에 켈러허는 "우리는 지상의 승용차와 경쟁하고 있습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물과 땅콩만 주는 기내 서비스는 사우스웨스트 비용 절감 전략의 본보기로 되어 있다.

유머 경영은 이미 '사우스웨스트 조크'라는 이름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폴로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갖은 농담을 섞어가며 승객을 즐겁게 하는 것뿐 아니라, 사우스웨스트는 회사 경영 전반에서 이런 유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생은 너무 짧고 힘들고 너무 진지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인생에 대한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켈러허의 철학에 따라 직원들은 즐겁게, 열심히 일한다. 그래서 이 회사에는 시키는 일만 하는 '좀비'도 없고, 오로지 일만 아는 '프로'도 없다. 사우스웨스트 직원은 웃음과 우아함을 갖고 재빠르게 일하고, 고객은 그들에게서 소탈하고 이해심 많은 프로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영은 자연히 직원 친화의 기업 분위기로 이어지고,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 가운데 노조 가입률이 가장 높은 데도 불구하고 극한 대결 상황이 거의 없다. 컨설턴트인 저자들이 여러 사례와 고객 편지 등을 이용해 재미나게 써 내려간 이 책에서 잘 알려진 사우스웨스트의 경영 방식 말고 추가로 눈여겨볼 것이 있다면 이 대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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