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에 전형적으로 출연하는 세 인물이 있다. 보안관과 무법자는 필수적이다. 결투의 무대는 마을 거리이지만 처음 시비는 보통 술집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술집 주인은 언제나 조연이 된다. 보안관은 무법자를 잡아 철창 안에 가두거나 죽이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술집 주인에게 무법자는 달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거되어야 할 대상도 아니다. 무법자가 말썽을 부리지 않고 술값을 잘 내거나 가끔 거래할 금덩이라도 들고 나타난다면 꽤 이익도 챙길 수 있다. 술집 안을 난장판만 만들지 않으면 보안관이나 무법자나 주인에게는 똑같은 고객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케이건은 '천국과 권력'에서 이 서부극의 상황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국제관계에 대입하여 재미있게 비유하고 있다. 즉 미국은 보안관이 되어 무법자를 쫓는다. 무법자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같은 불량국가이다. 프랑스 등 유럽연합 국가는 술집 주인에 해당한다. 유럽 국가들은 이라크 체제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눈 뜨고 못 보는 상대는 아니다. 내키지 않지만 공생할 만한 존재이다. 프랑스에게 이라크는 무기 고객이고 석유이권이 걸린 거래선이다. 더구나 걸핏하면 힘을 앞세워 술집 안에서 총을 난사하여 손님을 쫓는 보안관같이 미국이 밉다.
■ 보안관의 총에 쓰러진 무법자처럼 이라크는 미국의 공격에 허물어졌다. 한낮의 대결투가 끝났을 때와 같이 세계는 이제 무법자를 쓰러뜨린 보안관의 장화 발소리만 크게 듣고 있다. 무법자를 처리했다는 데 미국에 할말이 없다. 그러나 총격전의 여운 속에 머리가 멍멍한 상태이다.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의 분위기는 마치 대결투가 지나간 후 정돈되지 않은 상황과 흡사했다. 부시는 세계의 안전을 더 강화할 방안을 제시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연합은 아수라장이 된 술집의 주인처럼 충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존심도 이익도 날아간 것이다.
■ G8 정상회담은 이라크 전쟁으로 불거진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갈등관계를 치유하고 새로운 의제를 조율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서먹서먹한 모습이 역력했다. 미국의 독주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그 힘에 도전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마치 무법자를 처단한 후 연기 나는 총을 손에 든 보안관 앞에 모두 할 말을 못 하는 형국이다. 사담의 이라크는 처단되었지만 부시 대통령은 G8으로 하여금 이란과 북한으로 눈을 돌리도록 주문했다. 대량 살상무기와 테러의 문제가 미국의 의중에서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 다른 '하이 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