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시위투성이다. 사람들은 무슨 명목을 붙여서라도 광장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것같다. 화물연대 파업에 이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동,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대립, 줄 서서 기다리는 여러 노조의 파업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들끓고 넘치고 있다. 집회와 시위가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우리 사회의 시위풍경을 결정하는 두 가지 도구는 머리띠와 촛불이다. 머리띠가 낮의 투쟁도구라면 촛불은 밤의 시위수단이다.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이 촛불을 든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거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방법이 다를 뿐 공격성 측면에서는 같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새로운 시위도구로 등장한 촛불의 공격성과 그 효과는 충분히 입증됐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머리띠를 둘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통적으로 머리띠는 각성과 결의와 단결의 기호였다. 머리띠에는 의병이나 입영장정들의 애국심, 대입 수험생의 굳은 결심, 반공운동자들의 빨갱이들에 대한 적개심 따위가 동여져 있었다. 요즘은 '단결투쟁'의 빨간 머리띠가 일상용품처럼 정착됐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1970년대부터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머리띠 시위가 늘어나더니 지금은 노조든 아파트 입주민이든 투쟁할 거리만 생기면 머리띠를 두른다. 삭발한 사람들의 빨간 머리띠는 더욱 강렬해 보인다. 빨간 색은 원색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며 공격적이다. 피의 색깔 빨강은 심리적으로 정열과 흥분, 적극성을 부추긴다.
그런데 암울했던 1970년대를 넘어 1980년대의 민주화투쟁과 폭발적인 노사분규 시대를 경험하고도 한국인들은 아직 머리띠를 벗지 못하고 있다. 머리띠가 문제가 되는 것은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며 상대를 압도하고 이기려는 도구로 의미가 고착됐기 때문이다. 머리띠에 담긴 것은 타협과 상대방 배려의 정신이 아니다. 외국인들도 지적한 일이지만, 머리띠의 투쟁문화는 경제발전은 물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통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면 촛불은 예쁘기만 한가.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의 1주기인 13일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 등 국내외 100여 곳에서 100만 촛불추모집회가 또 열린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촛불집회는 가히 2002년의 히트상품이라고 할 만큼 대성공을 거두었다. 촛불집회는 시민들에게 공동체의식을 키워 주었으며 '위로부터의 집회'에서 '아래로부터의 집회'로 시위문화를 바꾸었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원래 촛불을 켜는 것은 우리 식이 아니었다. 추모의 도구로 촛불을 켜는 것은 자신의 몸을 태워 바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추모에 더해 평화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반전·반미의 투쟁도구로 그 의미가 달라졌다. 촛불집회가 계속될수록 그에 반대하는 시위도 가열된다. 이번 행사가 끝나면 21일 같은 장소에서 보수우익측이 머리띠를 두르고 '반핵 반김정일 및 6·25, 6·29(서해교전) 전몰자 추모대회'를 연다. 100만 시위의 대결이다.
머리띠든 촛불이든 다중의 힘을 동원하고 과시해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는 것은 같다. 머리띠가 빨강이라면 촛불은 노랑이다. 이 두 가지 난색(暖色)은 주의 조심 경고 정지 따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빨강이 강렬할수록 쉽게 휘발해 버리듯 촛불도 자주, 그리고 많이 켤수록 그 의미가 변질된다. 1주기 행사를 끝낸 뒤에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촛불집회를 열 것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촛불집회의 참여자들은 촛불이 만들어내는 낭만적 분위기에 취하게 된다. 어찌보면 촛불은 새로운 유행이고 패션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촛불집회가 일종의 레저다.
머리띠와 촛불은 불필요할 정도로 보혁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시위가 상대방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른바 톨레랑스(관용)의 정신을 발 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임 철 순 논설위원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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