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30분 경기 여주군 강천면의 한 사설천문대. 구름이 걷히자 먹지에 구멍들이 뚫린다. 별(혹은 행성)이다. 서쪽 하늘로 목성이 기울고, 동쪽 나지막한 곳으로 봄 밤의 간판스타, 목동자리가 뜬다. "유난히 밝은 별 보이죠? 그게 1등성 아크트루스입니다. 아크트루스는…." 천문대원의 설명이 시작되면 소란스럽던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운다. 만화영화, 로봇과 PC게임에 익숙해서 일까. 듣기에도 불편한 라틴어 별 이름들을 아이들은 잘 익힌다고 했다.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지나가는 이맘때의 하늘은 초저녁에는 봄, 한 밤은 여름, 새벽녘은 가을 별자리들의 향연으로 북적인다. 그래서 밤 10시면 남북을 가로 흐르는 은하수와 직녀·견우를 만날 수도 있고, 새벽 3∼4시면 페가수스를 볼 수도 있다. 이름을 지닌 별자리는 모두 88개. 이 가운데 우리 나라에는 50∼60개의 별자리가 뜬다.
강사들은 대부분 별을 좋아하는 대학생들이다. 그들이 늘 곁에서 별자리 이름의 유래와 사연들을 들려준다. 질문이 많을수록 신명을 내는 이들이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만나는 것도 별 구경 못지않게 유쾌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빛을 버려야 하고,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천문대장 김영진(29)씨는 "평지에서 도시의 불빛―그들에게는 잡광(雜光)―을 피해 별을 볼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말했다.
인간과 문명의 위세는 그나마 남은 신의 영토도 급속히 유린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연간 약 4,000여 개. 하지만 이는 구름 없이 완벽한 날 산 꼭대기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도시에서는 어림도 없다. 서울의 밤 하늘에 은하수가 흐른 것은 20년도 더 된 전설이다.
천문대가 선 장소는 광해(光害·빛공해)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곳들이다. 어느 곳이나 날씨에 좌우되기는 하지만 남쪽 전갈·궁수자리를 지나 북쪽 거문고·백조자리에 이르는 은하수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별자리도 그려 볼 수도 있고, 행성과 별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우와!' '우와!' '우와!' 관측시설을 잇는 통로를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이 탄성 도미노를 연출한다. 사설 천문대의 관측장비와 시설은, 보현산 등지 국립 천문대에 비할 바야 아니지만, 어른 눈에도 신비하고 신기하다. 66㎝ 구경의 거대한 천체망원경과 밤 하늘의 별자리를 옮겨 놓은 듯한 천체투영관, 저절로 돌고 열리는 슬라이딩 돔 지붕 등 볼거리는 넘친다. 천문대 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시청각 장비를 안 갖춘 곳이 없어 극지의 백야와 지구의 자전 등을 가상체험에 준해 배울 수도 있다. 학생들을 이끌고 왔던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들은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강사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녁에 가서 별을 본 뒤 돌아올 수도 있지만, 자고 오는 것도 좋다. 대다수 천문대들이 숙박·취사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천문대들은 입지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산림욕이나 래프팅 등 부수적인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것들을 묶어 1박2일, 2박3일 패키지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야영시설을 갖춘 곳에서는 텐트를 빌려 잔디밭에서 밤새 별빛 샤워를 즐길 수도 있다. 7,8월 성수기는 물론이고, 요즈음도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일주일, 보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 수도권 주요 천문대
세종천문대(경기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031-886-4147)
남한강 지류인 섬강을 끼고 청소년 수련원을 겸하고 있어 규모가 크고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별 관측에는 밤안개 복병이 있지만, 대신 낮에 섬강 래프팅과 삿갓봉 오리엔티어링 등반을 할 수 있다. 멤버가 갖춰지면 서바이벌 게임도 가능하다. 민간시설로는 최대 천체망원경 보유. 수용규모 600명, 가격 4만원(성인 1박3식).
코스모피아(경기 가평군 하면 상판리·031-585-0482)
별 관측과 상극인 두 가지(물과 빛)를 피해 명지산 중턱 16만평 부지에 자리를 잡았다. 새벽 1시건 2시건 원하면 자유관측이 가능해 강사진은 대개 새벽 2∼3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든다. 인공조림된 17만주의 잣나무 낙엽송 숲에서 산림욕을 즐길 수도 있다. 수용규모 120명, 가격은 6만원(성인 1박2식).
양평 중미산천문대(경기 양평군 옥천면 신북리·031-771-0306)
한 천문분야 전문기획사가 가장 최근(2000년3월)에 개장한 천문대. 그래서 시설이 깔끔하다. 서울 동부에서 1시간이면 닿아 시간 대비 관측여건이 가장 좋다. 낮에는 산림청에서 위탁한 숲 해설가가 중미산휴양림 생태기행에 앞장을 선다. 수용규모 120명, 가격 6만원(성인 1박2식).
안성천문대(경기 안성시 미양면 강덕리·02-777-1771)
망원경 장비업체가 설립한 곳이어서 관측장비는 늘 최고 수준. 오랜 운영 경험(96년 설립)이 있어 교육 시스템이 알차다는 평. 최근 안성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잡광이 없진 않으나, 아마추어들의 관측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수용규모 60명, 참가비 2만5,000원 방 임대료 2만원(4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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