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20>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20>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다

입력
2003.06.06 00:00
0 0

세일즈를 하는 비즈니스맨이라면 모두 제조업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남의 물건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을 팔아보고 싶은 꿈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정신없이 무역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아쉬움이 남았다.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품었던 이 같은 생각은 사업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강해졌고, 급기야는 심한 속앓이를 하는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천신만고 끝에 판로를 개척했지만, 품질이 따라 주지 못해 실패를 거듭하고 어떤 경우에는 계약을 성사시키자마자 생산자가 다른 곳으로 판로를 돌리기도 했다. '내가 직접 만들어 팔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물론 제조업을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공장을 지으려 해도 비싼 값을 주고 땅을 사들여야 하고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기술 확보나 생산직 인력관리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던 차에 기회가 왔다.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이동할 때 타는 '전동 카트' 샘플을 소개 받은 것이다. '이거야 말로 내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샘플을 보는 순간 결심이 섰다.

우선 급한 것은 공장 확보였다. 마침 지금의 애경 백화점 부근에 공장 부지가 나왔다. 한국전쟁 당시 사람들을 집단 학살한 장소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까지 돈 허름한 곳이었지만, 돈 없는 마당에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급한 대로 1층은 공장, 2층은 사무실로 개조해서 카트 연구 개발에 들어갔다. 예상은 했지만, 제조업은 정말 힘들었다. 기술도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클레임이 걸리지 않을 만큼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실 제조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적어도 3∼4년은 까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어떻게 버텨내느냐에 달려있다.

품질 불량으로 곤욕을 치르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꼼꼼한 준비 과정을 거쳐 1년 만에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첫 제품을 미국에 실어 보내자 마자 문제가 터졌다.

전동 카트의 동력 전달 장치에 문제가 있어 소음이 굉장히 심했다. 아무리 소음을 줄이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배터리 작동이 되지 않는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는 등 줄줄이 결함이 드러났다.

카트를 판매한 돈의 절반 이상을 클레임 해결 비용으로 써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오기 반, 확신 반으로 카트 생산을 계속 고집했다. '기술만 축적되면 반드시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야심차게 뛰어든 카트 사업이 흔들리면서 회사 사정도 나빠졌다. 휠라로 번 돈을 카트에 쏟아 부으면서 자금이 쪼들리기 시작했고, 다른 비즈니스도 영향을 받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회사가 어려우면 내부에서 잡음이 나게 마련이다. 회사 재정상태가 나빠지자 직원들도 불안해 했고 손발이 잘 맞았던 창업 멤버들 사이에도 틈이 벌어졌다. 딴 마음을 먹는 간부들까지 나타났다.

가장 믿었던 S가 문제였다. 화승 시절부터 나와 같이 일했던 S는 신발 비즈니스에서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했고, 나는 회사 주식의 20% 정도를 공로주로 줄 정도로 그를 믿었다. 한마디로 '내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S가 어느날 반기를 들었다. "회사 이 지경이 된 것은 형 책임입니다. 감당도 못하면서 괜히 일을 벌려서 60명 직원들의 생활까지 위협 받고 있어요. 이제 오너로서 자격이 없으니 나가 줘야 합니다."

억울한 생각보다는 서글픔이 앞섰다. '어떻게 S가 내게 이럴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S가 반기를 들자 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서로 파벌을 이뤄 옥신각신 싸우는 바람에 회사는 내분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하면 사업을 하면서 이때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비록 회사를 통해 만났지만, 친 형제처럼 생각했던 사람이 뒤통수를 치자 회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