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국책 사업들이 표류하고 있다. ★관련기사 A4·5면'단군 이래 최대 규모' 등 갖은 수식으로 치장했던 사업들이 환경 파괴와 생존권 침해 등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중단돼 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권위 부재와 조정력 상실에서 비롯된 이 같은 현상으로 주민간, 지자체간, 정부·시민단체간 대립과 긴장만 증폭되는 양상이다. 국가경제와 주민편익 증진을 목적으로 시작된 국책 사업은 주민·지자체를 편가르는 민심 장벽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노태우(盧泰愚) 정권 때 시작된 새만금 사업은 종교계, 환경단체의 반발과 정부의 재논의 결정으로 또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 사업에 명운을 걸어 온 전북도 공무원들이 집단사표 결의라는 초강수를 내놓고, 도민들이 상경 투쟁에 나서면서 새로운 갈등국면을 맞고 있다.
대구―부산을 잇는 경부고속철도 2단계사업인 금정산 구간 공사는 종교계와 환경단체의 반발로 3월 이후 중단됐다. 2006년 완공 목표인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도 일산―퇴계원 구간(36.3㎞) 사패산 환경파괴 논란에 막혀 2001년 11월 이후 방치돼 있다.
경인운하 사업은 경제성 및 환경 영향을 둘러싼 마찰로 시행여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립은 부지선정 난제를 풀지 못한 채 지역간, 주민간 갈등만 키우고 있다. 호남고속철 분기역 입지를 둘러싼 대전과 충남·북의 힘겨루기도 입지선정 용역, 재검토를 반복하며 지역간 감정의 골만 깊게 했다.
정부는 눈치보기와 무기력으로 일관해 왔다. 리더십과 조정능력 부재는 이해집단간 힘겨루기를 부추겼고, 의견 수렴 절차는 갈등을 증폭하고 세(勢)를 과시하는 장으로 변질됐다. 사업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정부가 신설한 검토위원회나 조정위원회 역시 단 한 건의 합의나 타협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국책사업들이 표류하면서 그간 투입된 수천억, 수조원의 예산이 사장되는 등 재정 손실이 커지고 있고, 사회간접자본과 관련한 국내외 자본유치도 악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서울대 이달곤(李達坤·행정대학원) 교수는 "국회가 토론을 거쳐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만큼 정책 조정의 수장인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서 시한을 정하고 조정기능을 발휘한 뒤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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