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변의 비리 의혹 보도가 수 주에 걸쳐 대대적으로 나오고 있다. 의혹 제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명쾌한 결론도 나오지 않은 채 공방만 이어지는 것 같다. 과연 독자들은 사건의 진실에 대해 계속 끈기와 관심을 갖고 대할 수 있을까. 문제는 수많은 사실들이 홍수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거기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져 있는지 독자가 판단하기 힘들다는 점이다.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은 실제 일어났거나 존재하는 객관성에 기초한 정보를 말한다. 누구나 관찰할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실보도는 확인과 검증을 필요로 한다. 이는 저널리즘의 객관보도주의가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원칙이다.
진실은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사실이 곧 진실이지는 않다. 진실은 당장 밝혀지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중에 밝혀지기도 한다. 또 진실은 하나가 아닐 수 있으며 새로운 진실이 여럿일 수도 있다. 일부 사실이 진실이더라도 반드시 전체가 진실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언론인 월터 리프먼은 저서 <여론> 에서 "뉴스와 진실은 같은 것이 아니며 명백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진실의 기능은 '숨겨진 사실'을 규명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허친스 위원회의 보고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 도 같은 맥락에서 "사실을 충실하게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에 관한 진실을 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유롭고> 여론>
언론은 사실을 진실인 양 믿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독자들은 진실 여부를 꼼꼼히 따지지 않은 채 보도된 사실을 그대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작은 사건도 언론이 크게 다루면 큰 사건이 되고, 반대로 중요한 사건도 언론이 다루지 않으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돼버린다. 언론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최근 보도태도를 보면 확인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이 과도하게 보도되고 있다. 기사 제목에서 큰 따옴표로 인용된 주장이 마치 진실인 양 비쳐지고 있다. 더욱이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한 의견들이 남발된다. 한 쪽의 주장이 반대 의견의 제시도 없이 일방적으로 보도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모두가 사실을 전달하는 방식이지만 검증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보도내용의 언어 표현도 문제다. 대통령의 '막말'이 식자층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일부 언론의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저널리즘 언어도 객관적 사실에 주관성을 교묘하게 덧칠해 독자의 눈을 멀게 만들고 있다.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진실처럼 보도하고, 사실과 의견이 뒤범벅된 채 의견이 사실로 포장되거나 사실이 주관에 의해서 덧칠되는 것은 언론이 쉽게 빠져드는 잘못된 관행이다.
특히 우리 언론의 정치 기사는 정치적 이념이나 계산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다. 그뿐 아니라 우리 언론은 수많은 오보에서 드러난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에 대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이 같은 오보가 사회에서 제대로 추궁을 받거나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일도 거의 없다. 물론 이는 일부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론인이건 독자이건 누구나 보도내용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구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실 보도로부터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분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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