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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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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저기까지 찼어요. 콩이며 고추며 밭에 심어놓은 것들은 터레기(털)도 남지 않고 몽땅 쓸려 갔지요.” 동강 초입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거의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상상은했습니다만 상황은 정말 심각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대형 굴삭기가 땅을파내고, 고르고 있었습니다. 굴삭기의 행렬은 동강과 길이 헤어지는 긴 구간 계속 이어졌습니다.한참 들여다 보니 ‘복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개발’의수준입니다. 망가진 도로는 더욱 넓혀지고 거죽에 포장까지 하는 식으로고쳐지고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마을마다 전원주택 혹은 펜션에 버금가는 멋진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예전에 줄배로 건너 다니던 나루에는 거의 예외없이 시멘트로 다리를 놨습니다. 마을 뒷산의 밭 사이사이로도 시멘트 포장길이 덮였습니다. 문산리에는아예 ‘대교’를 건설중입니다. 동강의 지도를 완전히 새로 그려야 할 정도입니다.

동강댐과 관련한 긴 싸움의 명분은 ‘지키고자 함’입니다. 그 명분은 순수했고 그래서 힘을 얻었습니다. 결국 동강댐 백지화라는 큰 성과를 얻었고, 동강은 지켜지는 것으로 모두 알았습니다.그런데 지금 동강은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지의 기준은 진입하는 길이 포장길이냐, 비포장이냐에 있습니다. 길이 넓어지고 반질반질해지면 들고 나는 사람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대문을 활짝열어놓는 격입니다. 대문이 열리면 절대 지켜지지 않습니다.

물론 동강 주민들의 생활의 편의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10년에 가까운 논쟁 속에서 녹초가 되어버린 주민들에 대한 보상으로는 싱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강에는 환경부의 생태보존지역 지정을철회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관련 당국과 주민들의 뜻이 아직통일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사이 동강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댐 건설 계획이 백지화하자마자 지키겠다는 의지도 백지화한 것일까요? 이제 다시 들여다 볼 때입니다. 지금 동강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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