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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크루즈/바다호텔에 오르자 시간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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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크루즈/바다호텔에 오르자 시간이 사라졌다

입력
2003.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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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경기도 평택항. 낮게 깔린 하늘은 연신 황금빛 석양을 토해내고, 힘차게 내달리던 서해대교는 노을에 기댄 채 잠시 그 위용을 잊고 고단한 하루를 마감한다. 크루즈 유람선에서 바라본 해질녘 항구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바다 호텔'은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나라 사람들로 구성된 승무원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 문을 연다. 발급 받은 승선카드로 객실 문을 열면 이제부터 그곳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느 관광처럼 빠듯한 일정이나 가이드의 시간엄수 '명령'은 없다. 그냥 하고픈 대로 자유롭게 즐기면 된다.

2만8,000톤 규모의 크루즈 유람선 '수퍼스타카프리콘'를 타고 경기도 평택항을 출발, 일본 가고시마와 나가사키를 경유하는 5박6일의 일정은 한마디로 자유를 만끽하는 여행이다. 총 길이 205m에 9층으로 이뤄진 이 배는 450개의 객실에 최대 1,35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금강산 뱃길을 오가며 통일의 꿈을 실어 나르던 금강호를 새롭게 개조한 것이다.

크루즈 여행이란 배 안에서 숙식과 휴식 등을 모두 해결하는 관광. 배에는 매일 이곳 저곳 각종 이벤트와 파티로 쉴 틈이 없다. 브라질 댄서들의 정열적이고 아슬아슬한 삼바춤에서부터 마술쇼, 노래공연, 카바레쇼, 빙고게임, 뮤지컬 코미디까지 나열하기도 힘들다. 푸른 바다를 향해 멋진 샷을 날릴 수 있는 골프 연습장과 농구장, 수영장, 헬스클럽, 사우나도 있다. 승객은 마음 가는 대로 골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세계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푸짐한 뷔페로 맛볼 수 있는 무료 레스토랑은 특급호텔 부럽지 않다.

이 같은 선내 프로그램은 한국어로 종이에 인쇄돼 매일 저녁 객실로 배달된다. 배 곳곳에 한국인 승무원들이 있어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다. 행운을 시험할 수 있는 카지노와 한국의 '타짜' 승객을 위한 화투경연대회도 벌어진다.

파도처럼 어둠이 잔잔히 밀려오는 저녁. 정장을 말끔히 차려 입고 선상에서 펼쳐지는 바비큐, 갈라 디너, 칵테일 파티를 즐긴다. 꿈처럼 쏟아지는 별빛을 맞고 있노라면 한편의 로맨틱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크루즈 밴드의 부드러운 선율 속에 다정한 인사말을 건네며 낯선 이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고급 파티문화를 맛보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시속 14노트(약 25㎞)의 배 속력보다 훨씬 더 빠르게 마음을 터놓는다. 어느새 오랜 벗이 되고 가족이 된다. 크루즈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승객들에 대한 열린 마음과 배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그곳은 지루하고 갑갑한 '바다 감옥'이 될 수 있다.

배에는 황혼의 여유와 신혼의 설렘이 함께 한다. "인생을 정리하고 제 2인생을 설계하는데 크루즈 여행만큼 좋은 게 없다"며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볼룸댄스를 즐기러 온 60대의 노부부. 폴 앵카의 노래 '다이아나'에 맞춰 '날렵하게' 스텝을 밟는다. 30년 행복한 결혼생활을 말하듯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너른 창밖 바다엔 황혼을 머금은 물비늘이 보석처럼 눈부시다.

황혼의 넉넉한 행복이 부러운 걸까. 이른 아침 갑판은 일출을 보러 나온 신혼들의 발길로 분주하다. 전날 밤 피곤(?)은 온데간데 없고 얼굴엔 사랑이 가득하다. 수평선 너머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사랑을,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서로에게 다짐한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 여행수첩

스타크루즈 한국지사는 현재 주1회 일요일마다 평택항을 출발해 옵션관광으로 가고시마와 나가사키를 기항하는 5박6일짜리 상품을 판매한다. 안쪽 선실 기준으로 49만9,000원부터. 호텔식 식사와 쇼 관람, 부대시설 이용이 포함되며 기항지 관광은 요금이 추가된다. 기항지 관광 없이 매주 금요일에 출발하는 2박3일짜리 주말 상품도 있다. 평택항까지는 덕수궁 앞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스타 크루즈 한국지사 1588-3800,www.starcruiseskorea.com

● 기항지 관광

크루즈 여행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는 것은 기항지 관광이다. 첫 도착지는 활화산으로 유명한 사쿠라지마 섬이 있는 가고시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심수관가(家)의 도자기 제작소인 심숙관을 들러 조선 도공의 숨결을 느껴본다.

번화한 쇼핑거리에서 일본 도시인들의 삶을 엿보고 싶다면 톈문간 거리를 권할 만하다. 또한 해안선 10㎞를 따라 펼쳐진 이부수키 온천에서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를 입은채 하는 모래찜질도 색다른 체험이 된다.

두 번째 기항지는 히로시마와 더불어 원폭피해로 유명한 나가사키이다. 원폭이 떨어진 정지점에 조성된 평화 공원과 네덜란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 사무라이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무사의 거리도 인기 있는 관광명소 중 하나. 집집마다 잘 가꿔놓은 정원이 눈길을 끈다.

시내 음식점에서 나가사키의 명물인 짬뽕과 카스테라를 맛보는 것도 좋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엔 유황이 지옥처럼 곳곳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운젠 온천(사진)에서 세상사를 잠시 잊고 '나른한 행복'에 젖는 것도 놓치지 말자.

/김일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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