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은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이끄는 강경파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대량살상무기(WMD)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이라크전을 주도한 네오콘(Neocon ·신보수주의자)이 주축이 된 미 행정부내 강경파들이 전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라크가 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조작하거나 부풀렸다는 것이다. 미군은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으나 전쟁 종결선언 한달이 넘기까지 한건의 WMD도 찾아내지 못했다. 미군은 전쟁전 WMD 또는 그것의 개발증거가 있을 곳으로 의심되는 900곳 이상의 리스트를 작성, 이중 200곳을 정밀 수색했다. 하지만 찾아낸 것은 곰팡이 냄새가 나는 진공청소기와 살충제등이 고작이다.■ 논란이 진전되면서 책임소재와 관련한 여러 주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 해병대 사령관은 "이라크가 생화학 무기 등 WMD를 사용하려 할 것이라는 판단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면서 "전쟁이 끝난 뒤 WMD 관련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이라크가 WMD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유엔 안보리 연설에서 조지 테닛 CIA국장의 동석을 요구한 것도 관련 정보가 허점투성이인 것을 알고, 사후에 책임을 덮어쓰는 것을 면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 그러자 테닛 국장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 "CIA의 역할은 보는 대로 사실을 전달하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정책 입안자에게 보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강경파들이 CIA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테닛 국장은 "CIA 과업의 본질은 시종일관 유지됐으며 정반대의 내용을 시사하는 어떤 것도 그릇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CIA 간부들이 "우리(CIA)를 (첩보영화 주인공인) 톰 크루즈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CIA에 대한 과잉기대를 경계했다. CIA라고 해서 전지전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 럼스펠드 장관은 이라크가 WMD를 미리 파괴하거나 다른 장소로 옮겨 놓았을 수도 있다고 한발을 빼는 모습을 보인다.
■ 미국은 1,400여명의 대규모 조사팀을 이라크에 파견, WMD 추가 색출작업에 들어갔고 미 상원 군사위원회와 정보위원회는 합동조사를 저울질 하고 있다. 미행정부의 최고 실력자들과 중앙정보국(CIA) 등 권력기관이 얽히고 설킨 이 문제가 어떻게 매듭될지 궁금해진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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