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로서 자기동일성의 위기(Identity Crisis)를 가장 심하게 나타낸 사람은 의외로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때때로 거울을 쳐다보고 그의 시종에게 근심하는 표정으로 "내가 총통같이 보이니?"라고 묻곤 했다.그런가 하면 "나는 하나님의 특사로서 확신을 갖고 신이 명령하는 방향으로 간다."라고 신문사 편집국장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자만하는 자기만족과 자기회의의 양 극단을 왔다갔다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자조적 냉소적 표현을 자주 쓰는 버릇이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약한 모습과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는 인간과 지도자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관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열등의식과 우등의식을 버무려놓은 퍼스낼리티를 갖고 있으며 자기동일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네덜란드의 작가 그로티우스는 '그리스도교의 진리'에서 "마호메트가 비둘기를 훈련시켜 자기 귀에 넣은 콩을 쪼아먹게 하고, 그것을 신의 계시를 전해주는 천사라고 말했다"고 쓰고 있다.
노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선전·선동 요소가 있다. 노 대통령의 수도이전공약이 선거용인지 아닌지는 노 대통령 자신만이 알 것이다. 그리고 자유분방한 그의 말은 막 걸러낸 쌀 막걸리와 같다. 그 맛이 서민과 약자의 입에 착 달라붙는다. 그의 말이 권위주의를 평등주의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비서나 각료들은 대통령이 말할 때 모두가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싫지만 듣지 않을 수 없는 청중, 즉 캡티브 오디언스(Captive Audience)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가장 토론을 많이 하는 대통령이라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일관성 없는 직설적 감성적 발언은 국가가 총체적 위기에 빠지는 데 일조 했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그의 말은 대상(對象) 반어적 유행어 "국민노릇 못해먹겠다"는 말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제는 말에 화장을 할 때다. 네모 반듯한 순정(純正) 대통령 언어를 기대해보자.
4일은 대통령이 된 지도 어느덧 100일이다. 대통령직은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 그러나 100일전의 취임선서를 되씹어 보기 바란다.
제34대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마음과 정신을 지치게 하는 것에 관한 한 대통령직은 아마도 가장 부담스러운 직업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은 결코 책무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윤 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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